태그 : 평화

나는 왜 군대를 없애려는가? 2008.11.

나는 왜 군대에 가기 싫은가?

10월 1일 국군의 날. 테헤란로를 행진하는 ‘완전 무장’ 군인과 탱크 앞에서 나는 벗었다. 무기 하나 숨길 수 없는 알몸으로 ‘완전비무장’을 표현했다. 쿠키로 만든 총을 맛있게 먹으며, 무기와 군대 없는 세상은 달콤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다툼이 싫다.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 그것은 소박한 꿈이었지만 살면서 그것이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TV에서 연일 보도되는 사건 사고, 피로 물든 전쟁과 분쟁의 소식들.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버젓이 전파를 타고 뉴스에 방영되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에서 선을 넘었다 안 넘었다 골을 넣었다 안 넣었다 시비 붙으면, 그냥 선 넘었다고 골 안 넣었다며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인권은 타협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학내 종교 자유를 외치며 어려운 싸움을 이어갔지만, 내게 그것은 당연한 무엇일 뿐, 새롭고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도 미션스쿨에서 종교 의식이 강제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원했던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게는 아직도 무척 당연한 것일 뿐이다 군대 문제 역시 내게는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물 대포가 쏟아지던 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전경에게 잡혔다. 머리는 샌드백이 되고 얼굴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고, 옷과 시계는 뜯어지고,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고. 경찰에서 풀려난 후, 군대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전의경 문제부터 시작하여 군사제도가 가진 모순을 들춰내고 싶었고, 군대를 없애기 위한 선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2년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군대에서 총을 들고 살상의 기술을 훈련하여 전쟁에 소용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전쟁’을 전제한다. ‘상상된’ 적이라는 개념이 그렇듯이 공격과 방어의 개념도 상대적이다. 또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자기 정당성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몽상가라고 부른다. 철없는 이상주의자라 해도 좋다.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군대, 왜 생겼을까?

원시사회에도 자기 생존을 위해 꼭 싸워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어는 우리의 이익을 위한 공격으로 변했고, 무기의 발달과 국가의 성립으로 직업군인제도와 국민개병적 군대가 만들어졌다. 이제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 다른 게 아니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역사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한국이 언제 가장 큰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폭력으로 죽은 한국 국민의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언제였는지. 완전히 같은 시대였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라. 군대가 강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지 않고 정복의 역사를 썼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남한 군사력이 막강했다면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에 따라 선제공격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군대는 스스로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만들었다.

세계에는 약 2,130만 명의 군인이 있다. 비정규군을 더하면 훨씬 많아진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51.6%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1분에 12억 원을 쓰는 셈이다. 세계는 군대 유지를 위해 매년 1,100조 원을 버리며,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즐거운 세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것처럼 발표되면, 다른 나라에는 좋지 않은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이익이 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 내용이다. 권력자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전쟁을 결정하면 총알받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군대에 가고, 배부른 고민이라며 병역거부자를 미워한다.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정부는 길 가는, 집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가 60만 대군을 만들었다. 그리고 100일 동안 5만 명을 굶어 죽이고 얼어 죽였다. 현재도 우리 군은 전쟁 없이도 매년 500명을 죽인다. 그들은 ‘애국’의 명분 아래 헛되이 죽은 희생양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덤 앞에서 애국심을 다질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힘을 합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군대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그 역사와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북 분단과 강대국들로 둘러 쌓인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인해 병역의무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왔고, 사람들은 병역의무의 형평성과 병역기피의 방지에만 관심을 집중하며, 군대 폐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국군의 날 탱크와 전투기를 아기에게 보여주며 박수 치는 부모가 ‘평화’ 누드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북한의 비열함을 욕하면서 3배 많은 간첩을 보내는 국방부와, 군대 폐지를 주장했더니 온갖 욕과 자살 권유 글을 쓰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어떤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에게 심하게 맞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요즘 엄마를 때린다. 그리고 “맞았으니 이제 빌어야지” 한다. 평소 아이는 친구 잘못을 지적하면 받을 수 있는 칭찬스티커를 거부했는데, 어느새 옳고 그른 것을 ‘맞았는가?’란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모든 곳이 군대다. 폭력과 상명하복의 문화가 가족, 학교, 회사, 국가기관을 휩쓸고 있다. PC방에는 죽고 죽이는 게임들만 가득하고, TV를 켜면 김제동 씨가 상관의 아내를 아줌마라 불렀다가 영창에 간 얘기를 하며 웃고, 원더걸스는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친구” 육군 홍보 노래를 부르고, 연예인의 군 입대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KBS에서 한겨레에 이르기까지 “오늘도 우리의 씩씩한 장병들은 국토 방위를 위해 군복무에 헌신하고 있다”는 보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사흘 만에 719명의 시민이 간첩으로 몰려 숨진 거창학살. 희생자 가운데 330명이 14세 미만 어린이였지만, ‘죽여’ 명령하자 군인들은 어린이도 간첩이겠거니 모두 죽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중의 15%가 본인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겠다 대답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침공에서는 95%의 군인이 적군을 죽일 각오를 하고 있었다. 세계도 군대다. 우리는 무조건 반사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가 되고 있다.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나?

사람들은 ‘나라는 군대가 지킨다’고 착각하지만, 나라는 온 국민이 함께 지킨다. 군대가 없어도,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는 안 망한다. 그런데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아도,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군인들이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채 24시간 나라를 지켜도, 부모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그리고 강대국이 쳐들어오면 대한민국에 군대가 있어도,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우리는 국가 재정 전부를 국방비에 투자해도 중국의 군사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건 국방력의 대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 없이 안보 없다고 말한다. 왜? 군대 갔다 오면 알게 될까?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개 개인적 경험담이다. 군대가 왜 필요한지, 군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부족하다. 더군다나 군대는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사람들은 왜 '옆집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 '외국인'은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까?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왜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는 걸까?

세계 경제대국이며 군사강국인 우리가 먼저 군대를 없앤다면, 좁게는 동북아시아, 넓게는 세계가 평화롭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에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 이라크 침공이 가능했을까? 만약 쿠웨이트가 미국에게 기지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과연 이라크 침략이 쉬웠을까? 전쟁을 없애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전쟁을 포기하면 된다. 도대체 어느 국민이 반대할까? 그러나 모든 국가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느 국가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 강국이 모범을 보이면, 다른 나라가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스스로 핵무기를 버리면, 일방적으로 버리면, 군비경쟁은 사라진다. 따라서 미국은 전 국방비를 폐기하라. 전쟁을 포기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경찰뿐이다. 이것으로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면 충분하다."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군대 없는 나라는 가능하다

2001년 12월 2일, 스위스에서는 ‘군대 없애기’ 국민투표가 시행됐다.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투표에 오른 ‘군대 없애기’의 지지율은 21%에 그쳤지만,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자 적어도 군비가 축소되었다. 군부 독재와 내전으로 얼룩진 중남미의 상황은 어떨까?
코스타리카는 “항구적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평화 헌법을 가지고 있다. 1949년 6주 간의 내전으로 2000명이 죽자, ‘군인의 수만큼 선생님을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대를 없앴고 국가 예산의 1/3을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중남미에서 가장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는 상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중남미를 앞마당으로 생각하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나라에 해병대를 앞세워 침략하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평화를 위해 모두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주변 국가의 분쟁까지 해결한다. 코스타리카 정치인들은 내전이 지속되는 중남미 국가들을 찾아가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진행했고, 그 결과 평화합의를 성립시켜 내전을 끝마쳤다.

외국의 침략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코스타리카 시민은 "무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낳는다" "군대를 가지면 다른 나라에 간섭하게 된다" "국방비를 교육비나 의료비로 돌리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휴전 상황 아니냐?"는 반론은 병역비리와 특혜, 20만 명의 공익요원, 후방에서 삽질하는 군인 앞에서 무의미하다. 북한의 침입을 걱정한다면, 왜 포크레인 한 대가 하루 할 일을 중대가 붙어 몇 날 몇 일 하는 걸까? 우리는 군사 독재를 거치며 몸을 불린 군대를 비판 없이 유지하며, 공짜로 부리는 인력을 철저히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10,000명 모아 군대 없애자 
"전쟁에 반대한다" "군대를 없애자" 외쳐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평화조약도 만들었지만 전쟁은 반복된다. 전쟁을 없애는 최고의 효과적인 방법은 시민의 군대 거부다. 매년 700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지금까지 1만 명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전과자가 되었지만, 그 선택은 개인적 의미를 가질 뿐,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넓히고 싶다. 그래서 나와 함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입대 거부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고, 현재 26명이 모였다. 올 해 20만 명이 군 입대를 하는데, 그 중 10,000명이 군대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군축은 가능하다.

결과는 달콤하더라도 과정은 눈물로 가득할지 모른다. 만약 군대 거부 캠페인이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는 병역기피죄로 감옥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또 전과자가 되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삶을 살아갈 확률이 크다. 더 많은 사람이 큰 부담 없이 군대 거부를 외칠 수 있게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와 친구들은 한국에서 군사 제도가 없어지는 날 헤어지기로 했다.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란 문구를 새긴 티셔츠 한 벌로 올 여름을 보낸 나는, 언론매체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고,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갔다. 하루에 1,000개가 넘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고, 최대한 모든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논의한다. 군대 거부 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군대 거부를 제안하면 사람들은 ‘왜 내가 나서야 해? 난 그냥 조용히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야!’ 생각할지도 모른다. 군대 거부는 ‘나’보다 ‘우리’를 위한 행동이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을지도 모를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지만 ‘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으니까! 내 가족과 친구가 힘드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힘들게 겪어온 과거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믿기에 다른 즐기고픈 일을 제쳐두고 나서게 된 것이다. 감옥에 가는 길 외에도 각자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참 많다. 여러분도 함께 하자. (손전화 010-4424-0419, 홈페이지 club.cyworld.com/armyno)

'평화'택시회사로 병역거부 전과자를 고용한다. '평화'당을 만들어 우리가 직접 '평화'헌법도 만든다. 그리고 탱크 위에 올라 손 흔드는 사람이 아닌, 고통 받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 전세계가 우리를 따라 군대를 없앤다.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꿈일까?

"군대 없애자"는 주장은 무척 간명해서 계획도 힘도 없어 보이지만, 프라하의 봄은 폭력 없는 미래를 보여줬다. 아무 훈련도 안 받은 체코 시민들이 소련군에 대항하여 병사의 총구에 꽃을 꽂아 주며 평화를 지켰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인도에서 소금의 제조, 판매를 독점하는 소금세법을 시행하려 하자, 간디는 직접 바다로 가서 소금을 만들어 쓰겠다며 행진을 시작했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간디는 혼자가 아니었고, 17년 후 인도는 독립했다..

당신은 어머니, 아버지를 죽이는 연습을 할 수 있는가? 따지고 보면 적군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우리는 대체 왜 싸워야 하나?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군대 없는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나 혼자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가 '우리'가 되는 순간 그 주장은 매우 현실적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전쟁 없는 세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누군가 우리를 폭력으로 정복하겠다면,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탱크 앞에 서자. 저항하는 국민은 죽일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다. 평화를 선택하자.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3 | 트랙백(1) | 덧글(2)

재미있는 대화

질문자=좋습니다. 당신이 평화주의자란 말이지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할머니를 공격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누가 저의 가엾은 늙은 할머니를 공격한다고요?
 
질문자=예. 당신은 지금 할머니와 함께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방에 침입해서 당신의 할머니를 막 공격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바로 그 옆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나는 아마 ‘할머니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방을 떠날 겁니다(말도 안 되는 질문 하지 말라는 뜻).
 
질문자=그렇게 대답하지 마시고요. 이건 정말 진지한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놈이 총까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도 총이 있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연히 그놈을 쏘아버리지 않겠습니까?
평화주의자=제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요?
 
질문자=예. 그렇습니다.
평화주의자=저는 폭력에 반대하기 때문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질문자=그러니까 가정이라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이겁니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이러면 되겠네요. 저는 그 사람이 쥐고 있는 총을 쏘아 떨어뜨리겠습니다.
 
질문자=어허, 그렇게 대답하면 안되지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당신은 총 솜씨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정확히 침입자의 총을 맞힐 수준이 안 된다고 치자는 이야기 입니다.
평화주의자=그럼 제가 총을 쏘면 안 되겠네요. 제가 총을 쏘다가 잘못해서 우리 할머니라도 맞히면 큰일 아닙니까?
 
질문자=허허. 참 귀를 못 알아들으시네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이 트럭을 몰고 있다고 칩시다. 당신이 차를 모는 길의 한쪽은 벼랑이고 다른 한쪽은 절벽입니다. 그런데 그 길 한가운데에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습니다. 지금 차를 세운다 해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저히 사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그런 경우라면 나도 모르겠네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질문자=질문은 제가 하는 겁니다. 당신은 모든 살인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라면서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평화주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어쨌든 , 알겠습니다. 지금 제가 트럭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질문자=그렇다고 칩시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열심히 경적을 울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이가 길에서 피하지 않겠습니까?
 
질문자=아이는 스스로 걷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겨우 10개월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적은 고장 났습니다.
평화주의자=아이가 너무 어려서 걸을 수가 없다? 그러면 잘 되었네요. 저라면 차를 잘 몰아서 그 아이를 살짝 피해 가겠습니다. 애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가 그렇게 해도 아이를 칠 염려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질문자=그건 안 됩니다. 그 길은 당신이 피하지 못할 만큼 아주 좁습니다. 한쪽은 절벽이고요. 당신은 아이를 피할 수가 없다니까요.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저는 절벽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가 제가 죽음으로써 아이를 구하겠습니다.
 
질문자=(잠시 침묵) 그렇다면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당신 차에는 지금 당신 친구도 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당신에게 친구까지 죽일 권리는 없는 것 아닙니까?
평화주의자 혹시 이 질문이 제가 평화주의자라는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질문자=당신 차에는 두 명의 생명이 타고 있고 상대방은 한 명 뿐이라는 겁니다. 그럴때 평화주의자로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두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면 한 생명을 포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화주의자=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만약 당신이 가정 속의 악과 진짜 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가정 속의 악을 택하라”고요
 
질문자=그게 무슨 뜻입니까?
평화주의자=도대체 당신은 왜 그렇게 평화주의자를 모두 없애버리지 못해 안달이냐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을 뿐 입니다.
평화주의자=좋습니다. 그럼 질문을 다시 정리해보지요. 나는 지금 내 친구와 함께 한족은 벼랑이고 한쪽은 절벽인 길을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제 앞에는 10개월 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지요?
 
질문자=바로 그겁니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서 친구를 창문 밖으로 나가떻어지게 한 뒤 절벽 쪽에 가서 부딪히고, 아이를 한 번 친 다음, 죽음을 향해 절벽으로 질주하겠지요. 그리고 보나마나 그 절벽의 한쪽 끝 어딘가에는 우리 할머니 집이 있지 않겠습니다까? 그래서 내가 모는 트럭이 할머니 집 지붕을 덮친 다음 할머니 집 안방을 완전히 날려버리겠지요. 우리할머니는 아까 나쁜 사람의 공격까지 받은 후 아닙니까? 그쯤 되어야 끝이 나겠지요?
 
질문자=당신은 아직도 내 질문에 답을 안 했어요. 자꾸 피하려고만 할 뿐이지요
평화주의자=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이겁니다. 막상 그런 상황에 닥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가정으로 만들어진 질문은 가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당신은 계속 끝없는 조건을 붙여서 나를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가정 속에서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이상, 당신의 질문은 절대로 끝이 안 나게 되어 있어요. 결국 그 대답을 얻어낸 다음에야 당신은 이야기하겠지요. “평화주의는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야” 라고 말입니다.
  
 
* 이 대화를 소개한 사람은 반전 평화 운동가였던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입니다. 한글 번역본은 김두식, <평화의 얼굴: 총을 들지 않을 자유>에서 가져왔습니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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