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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 종교자유?



헌법 위에 있는 미션스쿨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사립학교였고 미션스쿨이었다. 사립학교는 국가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나 법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공립학교보다 국가의 지원이 아주 조금 적으며, 학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매우 크다. 사립학교의 장점은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맞춤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학교 설립자나 교사의 주관에 치우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션스쿨은 특정 종교의 선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교 이념에 따라 세워진 많은 사립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다. 그리고 일부 학교는 종교 교육이나 종교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까?"
대한민국 헌법은 '예.'라고 답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소재한 미션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까?"
배움의 공간인 학교에서는 '아니요.'라고 답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연말에 고등학교에 배정받기 위한 원서를 작성한다. 그 원서에는 자기의 이름, 주소, 성적 등등을 기입하며,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도 기입했다. 그런데 종교와 상관 없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무작위로 배정된다.
무교인 나는 개신교 미션스쿨에 입학했고, 개신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선서를 하게 된다. 전교 1등으로 입학한 나는 선서 하기 몇 분 전에야 선서 내용을 받고, 다른 친구들은 내가 선서문을 읽으니 따라 읽을 뿐이다. 그리고 선서 내용은 개신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내용뿐인데,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게 된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번호 순으로 돌아가며 대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종교 의식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매주 1시간씩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종교 구절을 외워야 했다. 이 시간엔 매주 돌아가는 반별 성가합창도 있다. 3박 4일간의 수련회에도 종교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든 프로그램을 하기에 앞서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을 따라 행동하겠다는 생활수칙을 외워야 했다. 매주 1시간씩 받게 되는 종교 수업에서는 성경을 읽거나 사이비가 어떤 것인지 공부한다.
모든 학교가 그렇듯이 학급마다 회장과 부회장이 있는데, 부회장의 명칭이 종교부장이다.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출석해야 하며, 당선되면 종교 의식을 담당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학생회장과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규정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자로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로 인해 출마를 포기하게 되거나, 출마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종교를 강요하는 것과,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수단으로 여기게 하는 것, 부정적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혔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개신교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불교 동아리를 만들 수 없다. 자기가 가진 종교의 신앙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이상한 현실에서 당연시되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사적 자치 혹은 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사적 권리가 우월해진 자유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가 가지는 근본이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다. 하지만 권리를 배우지 못하고, 의무만을 강요 받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겐 어울리지 않다. 아래와 같은 말이 어울리며, 인권이란 단어는 더욱 멀어져만 간다.
"권리를 배우려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조직 속에 속하게 되면 두려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조직의 문화 속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며 그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학교에 교육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서 온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그것은 선택권으로 주어진다. 선택권이 없다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떠한가? 그들에게 자율적인 선택권이 보장되나? 그렇지 않다. 보충수업 참가여부, 교과목의 선택, 교복 강제 등등. 학생들의 선택권은 보장되지 못한다. 그 환경에서 학생들은 '어떤 것을 하면 안 된다'는 문장의 집합인 교칙으로 두발상태와 용의복장을 규제 받고, 별다른 잘못이 없어도 무자비하게 맞기도 하며,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에 묻혀 그런 것들에 대해 순종해버리고 있다. 심한 말로 한다면, '무비판적인 순종이 미덕'이라는 문화에 세뇌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종교의식이 강제적으로 행해지고 그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반항아이며 옳지 못한 학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것이 학생들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션스쿨에 입학하고 나서 종교 의식을 강제하는 것이 어이없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친구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용해진다. 비판한다고 바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종교 의식을 거부하려는 그들에게, '그래, 너희들의 종교도 보장한다. 하지만 건학이념이니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지 않겠니. 선서도 했잖아. 그리고 이건 종교가 아니고 선생님의 지시에 대한 거야'란 말로 회유한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비판할 마음을 포기하고 합리화한다. 종교 의식의 강제라는 현실이 '이걸 왜 해야 하지?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에서 이제는 '이건 당연한 거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합니다. 법원에서는 2007년에 사립학교가 학생들의 진정한 의사에 관계없이 기독교의식을 강제하는 등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나 학습권 등을 침해한 것은 사법상(私法上) 인격권의 침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러한 학교측의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학생에 대한 퇴학처분에 중대한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아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으나, 2008년 고등법원에서 1심 판결을 뒤엎고 학교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현실과 법 모두 인권과 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상대적인 약자인 학생들이다. 계속해서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방과 후에 선택적으로 종교 활동을 실시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종교교육은 실시하되, 종교 활동은 종교 기관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14:01 | 트랙백 | 덧글(2)

나, 빨갱이?

전화벨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네.” “네? 황당하시지 않으세요? 괜히 잘 지내는 사람을 들쑤셔 놓았잖아요.” “아, 그거요?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죠.”

대광고 전 교장선생님 탁준호씨는 최근 발간된 <대광 60년사>에 “강의석은 민노당·민주노총·전교조 등의 사주와 조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활동은 ‘종교의 자유’를 위장한 반미·반기독교 좌파연대운동이었”고, “고지식하고 단순한 학생(나)은 시류에 영합해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시민단체 등 동조세력과 어울리며 집회에 참석”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해 있었다”고 쓰셨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재밌었다. 하하하. 잠시 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서운하고 답답해서 우시겠다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03년 11월 3일 학생의 날. 대광고 학생회는 ‘저질급식 개선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버튼을 학생과 교사에게 나눠줬고, 복도에는 각 학급 학생들의 요구가 담긴 대자보와 만화를 게시했으며,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자유 발언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이 인사할 때 선생님께서 무시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합창부원은 음악점수가 무조건 97점 이상이고, 그 외 학생들은 80점인 억지는 없어져야 한다.” 등등 이야기가 나오며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만세 삼창을 하고 끝내라는 교감선생님의 제안에 “학생이 주인이 되는 대광고등학교 만세! 만세! 만세!”를 다함께 외치며 나는 참 행복했다.

1시간 후, 학생부장님께서 날 호출하셨다. 학생부실엔 좀 전에 강당에서 “교장선생님 말씀 좀 짧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후배가 혼나고 있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선생님, 뭐 하세요?” “(웃으면서) 맞는 말인데 그런 말 거기서 하면 안 되지.” “(정색하며) 이 친구, 잘못 없습니다. 보내 주세요.” (중략) “(버튼을 보여주며) 이딴 거 계속 달고 다닐 거야?” “네.” “(버튼을 던지며 호통) 나가. 징계위원회 열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징계위원회’란 얘기에 깜짝 놀라기도 잠시, 그로부터 일주일간 나는 수업 도중에 체육부실에 계속 불려 다니며 반성문 작성을 강요받았고, 잘못한 게 없어서 쓸 수 없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점점 지쳤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고, 당당하게 맞서기로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며 집에 왔는데 엄마가 나를 살포시 안아 주셨다. ‘오늘 따라 내가 사랑스러운가?’ 나도 엄마 사랑하는데 뽀뽀라도 해 드릴까 하며 얼굴을 바라봤는데 맙소사 엄마는 울고 계셨다. “의석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자.” “(울음보가 터지며) 응.”

다음날 나는 학생부장님께 잘못했다고 빌었고, 예상 외로 가벼운 벌인 훈계 조치로 끝났다. 나중에 들었는데, 매주 진행되는 교직원 회의 건의사항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손을 번쩍 들고 단상에 나가 내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선처해 달라며 우셨다고 한다. 나는 또 울었고 곧 있을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 울게 될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 내게 교감이 충고했다. “나는 고3 때 입시준비에 매진하느라 교회도 안 갔다. 너만 능력 있는 게 아닌데 너무 욕심 내지 말고 회장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공부해라. 안 그러면 다시 징계위원회를 연다. 대학 가서 한총련 활동 할까 걱정된다."

학생회장이 된 나는 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교내외에서 인권 캠페인을 펼쳤고, 교장과 교감은 나를 퇴학시키면서 자식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배후에 좌파세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008년 5월.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 반대 촛불문화제’를 10대가 주도하자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충동적으로, 연예인 따라서, 놀이 문화가 부족해서,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아 거리에 모인 것이라고. 그러나 연령을 기준으로 나와 너를 가르고 너는 나보다 못하다며 ‘찌질이’ ‘빨갱이’ ‘빠순이’로 규정짓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정신연령은 나이와 반비례하나 보다. 울지 말고, 우리 다함께 환하게 웃자!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4 | 트랙백 | 덧글(0)

작별인사 2006.5.14.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던 주의 일요일 날.
평소 일요일마다 함께 놀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급히 해결할 일이 생겼는데, 그거 해결하고 다시 올게."
 
제가 우선적으로 고려하던 가치들이 순위에서 밀린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들이 변화한 것을 보며 절대적 정의의 존재여부에 대해,
지금 이 순간, 다시 한 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와 버렸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학교 방송실에서 마이크 앞에 앉아, 이 얘기를 꼭 해야 하나 안 하면 안 될까 고민하던 순간.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저는 참 망설였습니다.


'의석아, 왜 굳이 피곤하게 사는 길을 택하려고 하니?'
'그냥, 내가 원하니까.'


중학교, 고등학교 때 보던 교과서나 문제집 표지 뒷면을 보면 두 가지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첫 번째는 "精神一到何事不成!"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못 할 일이 없다)
두 번째는 "이 몸 바쳐 평화를 위해 헌신하겠다."


평화를 왜 그렇게도 바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 저에게는 평화-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는 바로 제 꿈이었습니다.


2006년 5월 11일 목요일, 오늘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7시 20분에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거르고 학교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을 계속 듣다가 자습도 하고, 근로봉사도 하다가 노래패 공연 준비를 했습니다.
그 후엔 동대문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5월 14일 두발자유집회 거리 홍보전을 했습니다.


그 순간 느낀 것은 나는 아직도 평화를 그렇게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외칠 때,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볼 때,
제 가슴이 뛰었거든요. 행복했거든요.


그러나 어려운 것은 제 삶의 이유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왜 살아야 하는가?"가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작년 1학기에, 저는 휴학을 했습니다.
몇 달 간, 제 자신에게 솔직한 상태로 하루 종일 생각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고, 저는 제가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때부터 가슴이 시키는 일들을 했고, 큰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가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꿈틀거려 며칠 간 생각의 늪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평화를 바라고, 평화가 올 때 행복하다는 가정을 떠올리며 헤어 나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제 자신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가지고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펴 본 결과 최근에 미래 계획을 얻었습니다.


첫째, 5월 14일, 20일 광화문집회, 24일 노래패 공연 후, 사법고시 준비를 할 것입니다.
둘째, 사법 연수원을 나와서 강제적인 병역제도를 반대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작별인사를 미리 올립니다.
인사는 미리 올리지만, 제가 이 공간을 떠날 20일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1:5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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