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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자 호적정정 사건 변호사 면담 2006.9.15.


  

                                                               왼쪽부터 정원일, 이태화 변호사, 강의석


        이태화 변호사는 지난 6월 22일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을 허가하는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낸 신청인 측 변호사로서 3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인 투쟁을 했다. 아래는 면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읽었던, 이태화 변호사에 대한 지난 6월 26일자 서울경제신문의 내용이다.


        “1,2심에서 모두 기각 당하고 대법원 상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대법관 구성원이 다양화 되면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기각되면 의뢰인이 얼마나 낙담할까를 생각하니 대법원판결 전까지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모릅니다."최근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 사건에서 트랜스젠더 A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태화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보통 잘 드러내지 않는 의뢰인의 딱한 사정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을 애기했다. 그는 "처음 의뢰인이 찾아 왔을 때 너무 어렵게 사는 애길 듣고 인간적으로 사건에 접근하게 됐다. 원래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사건을 맡고부터 그 분야에 대해같이 공부를 시작했다"며 3년 전 A씨가 사무실을 찾았을 때를 회상했다.A씨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정신과 신체는 남성인 성전환자였다. 주민등록상성과 실제 성이 다르기 때문에 회사에 찾아가도 취직이 안 돼 변변한 경제생활 한번 못했다. 또 관공서를 찾아 가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등 이루 말 못할 어려움을 겪으며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는 호적정정을 시도해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실패한 사례가 많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하리수씨의 호적정정 뉴스를 접하고 용기를 내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은 후 전국의 성별정정 허용과 불허 사례를 살펴봤다. 사례를 살펴보니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은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개별 법관의 철학과성향에 따라 판단이 내려졌다. 전향적인 판사가 담당하면 허락되고 보수적인 판사에게 사건이 배당되면 불허되는 등 운에 따라 소수자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불합리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번 판결을 위해 2년 동안 대법원에서는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갖고 공개변론을 하는 등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 대법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의뢰인 A씨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았다"고전했다. 성별 정정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그 삶을 옆에서 본 사람은 병역기피 등을 이유로 쉽게 성별을 바꿀 우려가 있다는 식의 비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성별 정정이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6개월 이상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통해 외관상으로도 성정체성과 일치되는 성적 특징을 갖췄을 때 허용돼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호적법을 고치는 등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2006년 9월 15일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법무법인 청풍 이태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뤄진 면담의 내용이다. 녹음된 자료를 바탕으로, 편집자가 반복되는 말을 삭제하고 문법적인 오류 등을 수정하였으며, 화자들 사이에만 인식될 수 있는 사실 또는 녹음상태가 부실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어의에 대한 왜곡이 없는 한에서 편집자의 어휘를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주로 강의석(이하 강)씨와 정원일(이하 정)씨가 이태화 변호사(이하 이)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 정: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내가 해 줄 말이 별로 없을 텐데.


강: 제가 처음 묻고 싶은 것은, 신문기사를 보면 하리수 씨 소식을 접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의뢰인이 찾아왔다고 하는데, 법원 근처에 변호사 사무실이 많은데, 신청인이 이곳을 찾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일반적으로 법률사무소에 사건을 의뢰하는 케이스는 크게 나누면, 어떤 인간 관계없이 명성이나, 또는 지나가다 간판을 보고 와서 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보다는 청주 같은 조그만 지방도시에서는 조금이나마 관계가 있는 경우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은 독특하잖아요? 제가 아는 후배가 소개를 한 거죠. 이것은 변호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라 보기 어려우니까. 특별히 부탁을 해서 맡게 된 것이죠. 물론 신청인의 경우 자기의 성정체성이 실제의 성과 다르기 때문에 생활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의뢰를 했고, 의뢰 후에 가능성이 있느냐는 대법원 판례는 없었지만 하급심에서는 해 주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뉘었는데, 담당판사의 인생관 등에 따라 달라지니까 대법원에서 일반적인 기준을 정해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대법원까지 가게 됐고, 그렇게 시작이 된 거지.


강: 근데,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우선 소송을 진행하며 1심에서 허가가 날 수도 있지만, 3심까지 가면서 긴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성전환을 하신 분께서는 심리적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잖아요. 이와 같은 소송 외에도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예컨대 국가인권위의 경우도 있죠. 그곳은 강제력은 없다고 해서 생각하지 않으셨더라도, 헌법소원은 생각해 보셨나요?


이: 헌법소원은 기본적으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일단 현 법제 하에서도 그 규정을 헌법적으로 해석할 경우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었기에, 또 법원에서 실제로 해 주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헌재는 생각하지 않았죠.


강: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생각해 보니, 뗄 수 없는 게 돈인 것 같아요. 변호사가 봉사직이 아닌 이상 돈이 필요할 텐데, 최소수혜층은 아무래도 법적 서비스를 얻는데 있어서 기회가 적은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많은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그래서 얘기되는 게 성공보수죠. 예컨대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할 때 배상금을 받으면 그때 변호사 비를 지불하도록 한다면, 최소수혜층에게도 법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가까워질 텐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개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완전히 배제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성공보수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거나, 의뢰인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 무리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사실, 의뢰인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줄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한편, 합리적인 한도 내에서의 성공보수는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사람의 기본 욕망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효율적으로 싸우고,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을 좀 더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적 정의는 지켜져야겠지만, 소송에 승리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쓸 경우 그 사람에게 좀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귀결이다. 사실, 유전무죄를 말하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의뢰인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하지 않으며, 합리적인 한도 내의 성공보수는 인정되어야 한다.


강: 이게 생소한 주제잖아요. 대법원의 판결과정도 보니까 의사, 목사의 의견도 청취하던데. 소송기간 동안 어떻게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법이라고 하면 법전이나 교과서를 보면 될 텐데, 이번 경우엔 성전환증과 관련된 정보를 어디서 구하셨나요?


이: 비교적으로 기본적인 책들을 읽었죠. 성에 대해 옛날에는 몰랐던 개념들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기본 성의 구별은 염색체,  XY등이지만, 섹스 개념이 다양화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도 성전환을 꼭 염색체로 구별할 수 없다는 근거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 지식들은 아주 깊은 것이 아니니까, 기본적인 책들을 읽었고, 법률적인 문제들은 현직에 계신 법조인들이 조언을 주셨고.


강: 성별 정정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특히 기독교계에서 반대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성별정정에 대한 종교적인 가르침을 살펴보니 반대하거나 죄악시하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단지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은 성서에 조금 나와 있기는 하던데, 그분들은 왜 이 문제를 반대하거나 비판하실까요?


이: 기독교에서는 성이란 신이 선험적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편 현실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들도 있죠. 그러나 종교는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상대성을 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의 과학이 발전하니까 성이 꼭 염색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젠더개념에는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일종의 병리현상으로 보고 있으며, 그 현상이 현대 의학의 발전하면서, 병리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 종교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성이란 것이, 남녀 구분의 가장 큰 것이 성의 역할이고, 그것의 가장 큰 역할이 생식의 기능. 그러므로 그렇게 반대한다고 보지만, 성전환자들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강: 유교의 경우, 자식을 낳는 것이 부모에 대한 의무인 것처럼 말이죠?


이: 그렇지. 그것이 기본적인 개념이죠.


강: 이번엔 개인적인 질문이 될 텐데요. 아까 기다리다가 프로필을 보니 법과대학과 법학대학원을 졸업하셨던데,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부터 법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변호사를 꿈꾸셨나요?


이: 다 변하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의사도 생각했죠. 법과대학은 시골에서, 시골에서는 권력 지향적이지. 입신양명한다는 게 최고로 치는 게 사법시험이고, 막연하게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슈바이처 박사에 빠져서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법과대학에 진학했는데, 대학 때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어요. 법 공부는 들 했지. 물론, 우리 때는 시골에서 서울 법대를 가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거든.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그런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강: 요새도 막 현수막 붙고 그래요.


이: 그렇군요. 나는 사법시험을 대학 졸업하면서 봤고, 현재까지 왔는데 대학진학 때 꼭 권력 지향적이지는 않았고, 사회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어요.


강: 그럼, 법대에 진학한 것은 권력지향적인 시골의 분위기와 주변의 기대 등에 의한 것이고, 법대에 진학해서는 자연스럽게 법과 가까워졌고, 아무래도 가깝게 있다 보니까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이: 그렇다고 해야겠죠.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강: 그런데, 또 이제 법 이렇게 하면 뭔가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잖아요. 어떤 교수님은 법과 젊은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시던데.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 나한테는 그게 부족한 편이었어요. 사실 대학 때는 법 공부를 하지 않다가 졸업 후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대학 졸업 때까지 법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법대 수업을 듣다 보니, 뭔가 비법대생과의 차이가 있더라고. 학부 때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법시험을 볼 때, 법대생과 비법대생은 프로와 아마추어라고 할까. 대학에서 놀고 나오더라도,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학을 왜 다니나 하지만, 뭔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그래서 대학을 나오고 나오지 않은 사람 사이에 평균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폭넓은 교양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강: 기억에 남는 변호 경험이 궁금합니다. 이 사건도 그럴 것 같은데, 이 사건 말고도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이: 글쎄, 아직 정리를 안 해봐서 모르겠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걸 집어보라면 없는데. 사실은 하나 하나 중요하죠. 소위 말해, 승패가 어느 정도 갈리는데, 형법에서는 유죄냐 무죄냐의 일종의 승패가 갈리죠. 법률가로서 전국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을 운이 좋으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기회가 이런 지방에는 많지 않지. 나는 사건 사건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당사자한테는 그게 모든 것이거든요. 20년간 변호사 일 하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당사자한테는 그것이 전체며 모든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경중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현재는 우선, 모든 사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 자서전을 한 번 쓰셔야겠어요.


강: 아까 전에 슈바이처 선생님 말씀도 들었는데, 존경하는 인물, 감동 받은 책, 영화에 대해 궁금합니다.


이: 책은 접할 때마다 좋죠. 기본적인 책들, 리영희 선생님 책이라든가,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도 읽고 문학도 읽고 좋은 책이 너무 많으니까. 하나를 딱 집기가 어렵네요. 최근에는 불교 관련 책도 읽고, 역사와 한시 등을 많이 읽어요.


강: 기본권의 보호, 특히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영역에서, 행복추구권이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하도록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법적극주의와 입법형성의 자유가 충돌하게 되는데, 그때 해결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과거 유신헌법 당시에 긴급조치 제9호, 헌법을 비방하면 잡혀간다는 내용 등의 적용을 놓고, 법관은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법을 적용하냐, 또는 정의를 적용하냐는 고민이었을 텐데, 그것은 법관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법부에 속해 있는 변호사, 검사, 법관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헌법적인 사고를 많은 사람이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2년 간 공부하다 왔는데, 그곳엔 헌법이 어느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그러한 헌법적인 사고의 적용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다. 물론 헌재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기는 하다. 사법적극주의냐는 문제에서, 기본적으로 그 부분조차도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긴급조치 때와 달리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사법적극주의보다는 정상적인 사회시스템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법적극주의가 앞서가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긴급조치 때엔 용기 있게 사법적극주의를 주장했어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사법적극주의가 얼마나 필요할까?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전자를 택한다. 어떤 면에서 사법적극주의는 후자를 중요시하는데, 그게 칼의 양면일 수 있다. 사회가 어느 정도 요구하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6년에는 사법적극주의가 어느 정도 있나? 상당히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그렇고. 사회의 정황을 인식하면서 그 정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보며, 헌법적 사고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법부와 입법부의 차이는 국민들에게 선출되었느냐는 것이잖아요, 미국 쪽에서 많이 비판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선출되지도 않은 사법부가, 국민이 뽑은 입법부의 권한을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말씀해 주신 것처럼 헌법이 있지 않느냐.


이: 그렇지. 헌법이 있어요. 헌법의 기본 틀을 가지고 하는 것이니까.


강: 한편, 지난 9월 6일부터 시행 중인 대법원 지침을 보면, 성전환자가 호적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만20살 이상으로 미혼이어야 하며, 자녀가 없으며, 남성의 경우는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면제를 받아야 하고, 병역 회피나 범죄 은폐의 목적이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동의를 하시는지 지침이 너무 엄격하다고 보시는지?


이: 글쎄, 판결의 진보적인 입장에 비할 때, 약간 엄격하다는 생각을 한다.


강: 그래도 허용할 만한 수준이고, 판결의 진보성에 비교해 볼 때 지나친 후퇴는 아니라고 보시는지?


이: 그렇지. 왜냐면 현실에서도 법적 안정성, 질서 유지를 중요시하니까. 사실 본질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고, 조금 엄격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 아까 우리나라 법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법부는 시험을 통해 뽑잖아요. 그러나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는 국민들이 뽑고 있는데, 그런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법정에서도 배심제를 도입할 예정이라는 말도 있고, 사법부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이런 노력이 필요한지, 또 어떤 제도들이 필요할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데.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가는 권력의 성격과 관련될 텐데, 미국의 경우, 주에서는 판사를 선거로 뽑는 경우도 있잖아요, 연방 법원 판사는 임용을 하고, 의회에서 인준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제가 된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사법부가 행사하는 권력의 성격은, 글쎄, 그런 부분이 다른 입법이나 행정보다는 그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론에 대한 것보다는, 판단 당위를 따지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봐요. 민주적인 절차가 개입되어야 하는 면도 분명히 있지만, 사법부에는 그 성격 상 독립성과 정확한 판단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므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통제가 커지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배심제의 경우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제도도 중요하지만, 임관제도를 다양화하고, 성적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준을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면 배심제라는 것이, 국민들이 사법절차에 참여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여론재판이 가능할 수 있고, 배심제도는 영국에서 생겼는데, 영국에선 거의 사라졌고, 미국에만 남아있는데, 현재 일본에서 연구를 많이 했고, 도입한다고 해요. 그러나 일본은 많은 숙고과정과 논의가 이뤄졌어요. 우리나라는 그보다는 많이 부족하고, 배심제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적인 문제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계급적 이익 등을 따질 수도 있고, 미국 사회에도 문제가 많아 배심제 폐지에 대한 요구도 많다. 예컨대 오 제이 심슨 사건도 그렇죠.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강: 그런데, 배심제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결정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반면, 현재 재판 절차를 보면 한 명, 세 명의 법관 또는 전원합의체에 의해 판결이 이뤄지는데, 한명의 법관이 재판을 하는 경우, 그분이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또는 어떤 가치관에 절대적으로 몰두하고 있을 경우, 편향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그런 면에서 3심제도가 있죠. 사실, 배심제가 도입되면 그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는데. 배심원들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또 이 말에 반발이나 문제가 있을 수는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은 일류국가엔 못 미친다고 본다. 물론, 노력을 많이 해서 발전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췄을 때 배심제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도 전면적으로 배심제도를 도입한다기보다는 제한적인 도입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민들의 바람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강: 사법부는 시험을 통해서 뽑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이나 입법부의 선출은 일반 국민에게 주어진 선거권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건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일반 국민들에 의한 현행 선거제도보다는 간접선거가 오히려 좋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현재의 평등, 보통선거는 과거 제한선거보다 발전한 것이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제도가 가장 합리적이고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보여 진다.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겠는데, 여론의 총집합이 항상 옳았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평등사상이 강하니까,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기업가 아니겠어요. 여기서의 합리성이란 최고의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고요. 예컨대 은행에서는 기혼자와 미혼자의 신용에 차이를 두는데, 그러니까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문제는 아니지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과, 대학을 나오고 사회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의 표 차이를 안 두는 것도, 두는 것도 그렇고, 우리는 선험적으로 보통, 평등 선거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답이 없는 것 같다.


강: 정신병자는 투표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죠.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정: 이번 사건은 호적법 제120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헌재에 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한 사건인데, 비슷한 사안으로 동성결혼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지금 법체계에서는 허용될 수 없잖아요. 동성결혼을 한 사람들이 인정될 여지가 있을까요?


강: 만약 저희가 동성결혼을 하러 이 자리에 온 것이라면 사건을 받아 주실 건가요?


정: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이: 헌법적 사고인데, 말하자면 헌법의 기본권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 사회의 성숙도와 관련 될 텐데, 개인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보지만 동성결혼의 경우는 성전환보다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보수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남녀 간의 차이에서, 기본적으로 생식능력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이가 사라지고 있는데, 만약 과학이 계속 발전하면, 공상과학에서 나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아이들이 탄생할 수 도 있지 않을까?


강: 소설 멋진 신세계처럼?


이 : 이젠 남녀의 구분 자체도 의미 없어 지지 않을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강: 끝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 내가 말씀을 줄 수 있을 만큼 정리되지 않았다. 한 60넘어서야 정리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법시험이 굉장히 어려운 모양인데, 내 경우도 그랬지만 대학 때는 자유롭게 많이 봤어요. 고민도 하고. 사회, 인간.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각박하고, 앞이 급하고 조급한 것 같은데, 크게 보면 2~3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투자해도 될 것 같아. 너무 조급하지 말고 젊을 때에 몇 년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해도 좋다고 봐요. 어느 한 분야에서 최소한 30년 이상 활동 할 텐데, 몇 년 동안은 폭 넓게 투자해도. 그런데 요새는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된 것 같다. 나는 대학 때는 법 공부를 전혀 안 했거든. 졸업 후에 1~2년 하다 보니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정리해 보면, 조급하지 말고 정의나 인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법률가로서 기본적으로 정의라는 관념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겠지만.


강, 정: 감사합니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09 | 트랙백 | 덧글(0)

성전환자 호적 정정에 대한 대법원 판례 연구 2006.9.18.

Ⅰ. 들어가며
        과거 영국에서는 의회가 막강할 때,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속담이 있었다고 하는데, 2006년 6월 22일 한국의 사법부1)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물론, 1996년 성전환자가 강간죄의 객체에 해당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관련해서 남녀의 생리적인 구분을 넘어선 젠더 판별 방식이 사용되었고, 2001년 부산지방법원에서 그 방식에 따른 호적 정정 허가 결정이 나왔지만, 그 판단들은 각 법관의 재량에 따른 결과물이었으므로 불안정했고, 실제로 거의 같은 사례임에도 신청이 불허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런데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용하는 최근 대법원의 판례는 그 기판력으로서 이런 논란의 여지를 없앴으며, 또한 앞으로 나올 판례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필자는 이 사건을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획기적인 지표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 사건 해석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법률이 없기 때문에 ‘사법부의 법의 해석 권한의 범위(입헌주의 혹은 사법 적극주의)’의 폭과 ‘입법형성의 자유(민주주의)’의 폭이 충돌하고 있는데, 대법관들 중 다수가 전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반면, 소수는 후자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필자는 법학개론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법률 문언의 한계와 확장해석, 유추해석 등의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대법관들 모두는 이 사안이 호적법 제120조에서 명하고 있는 문언의 한계를 넘는다고 보고 있지만 그 해결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Ⅱ. 사안 소개
        판례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안을 소개한다. 신청인은 호적상 여성인데, 성장기부터 남성적 기질과 외관을 뚜렷이 보이고 남자 옷을 입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등 일상생활에서 여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남성으로의 귀속감으로 혼란을 겪어 왔으며 20대에 이르러 타지로 나가 공사인부 일을 하는 등 남성으로서 생활했다. 수술비용을 마련한 41세 때, 병원에서 성전환증의 진단 하에 유방, 자궁, 질을 제거하고, 수술을 통해 남성 성기 및 음낭을 갖게 되었고 그 후 계속 남성호르몬을 투여 받음으로써 남성의 신체와 외관을 갖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신과적 검사 결과 남성으로서의 성적 정체감이 확고했다. 신청인은 한 여성과 동거하고 있지만 남성으로서의 생식기능은 존재하지 않고, 도로교통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1회 선고받은 외에는 전과가 없고 신용불량전력도 없어 신청인이 성별 란의 정정 및 개명으로 범죄 또는 탈법행위를 할 개연성은 보이지 않는데,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호적 정정 신청을 했다.


Ⅲ. 판례의 입장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위 사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신청인은 미혼으로 자녀가 없으며 성장기부터 여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남성으로의 귀속감을 나타내면서 성인이 된 후에는 오랜 기간 동안 남성으로서 살다가 의사의 진단 아래 성전환수술을 받아 남성의 외부 성기와 신체 외관을 갖추었고, 현재 남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이 확고하여 여성으로 재전환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남성으로서 인식되어, 결국 사회통념상 남성으로 평가될 수 있는 성전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호적법 제120조는 위법된 호적기재의 정정에 대한 조문으로, ‘호적의 기재가 법률상 허용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나 유루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이해관계인은 그 호적이 있는 자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호적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데 다수 의견은 성전환자의 행복추구권과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입법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호적 정정 허가를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여 합헌적 법률해석을 주장하며, 소수 의견은 유추해석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 다수 의견에 반대한다. 한편, 소수의견은 문언의 한계를 넘은 것을 유추해석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의 판례는 ‘사람의 성은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내부 생식기와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정신적인 성과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2)’며 과거의 전통적인 성 결정방식을 부정하고 젠더 판별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남성, 여성을 판단하는 주요한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는, 생물학적인 성을 기준으로 성별을 판단하는 성 결정 방식(sex determination approach)으로서 정상적인 이성의 성염색체 구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한다. 예컨대 남성에서 여성으로 호적정정을 하려면 남성 생식기관의 제거와 여성 생식기관의 삽입 등으로 이성의 외관을 갖추는 것 외에도 아예 염색체가 XY에서 XX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 자기확인 방식(gender self-identification approach)으로서 육체적인 성과는 상관없이 성적 자기 정체성만을 기준으로 성별을 판단한다. 셋째는, 젠더 판단 방식(gender assessment approach)인데 이성으로서의 성정체성과 외관을 갖추면 이성으로서 인정하는 방법이다.3)


Ⅳ. 소수자 기본권 보장의 관점
        법이 금지하지 않은 것이 다수자의 기호에 맞지 않는 이유만으로 배격된다면 우리는 법치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인권법 속의 ‘사람’은 다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헌법에 있어 기본권의 보호 범위는 오히려 외국인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한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들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도출된다.


Ⅴ. 입법형성의 자유의 관점
        대법원 1995.9.15. 선고 95다23378 판결을 살펴보면 “환경권에 관한 헌법 제35조의 규정이 개개의 국민에게 직접으로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사법상의 권리로서의 환경권이 인정되려면 그에 관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있거나 관계법령의 규정취지 및 조리에 비추어 권리의 주체, 대상, 내용, 행사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헌법이 명시한 권리라 할지라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규정이 없으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안의 경우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이 주요 쟁점이고,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법률을 찾아야 하는데, 대응되는 법률이 없는 현실에서 기본권의 침해는 안타깝지만 관련된 입법을 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률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입법부의 권한 침해이며, 그것은 삼권분립의 기초를 흔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이 판결에 담긴 사법부의 입장도 이 문제는 특별법의 제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하리수 씨의 등장을 통해 여론에 오르게 된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은, 회기 만료로 폐기되기는 했지만 2002년 김홍신 전 국회의원의 성전환자의성별변경에관한특례법안의 발의로 이어졌고, 현재 노회찬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법안 발의가 준비 중이다.


Ⅵ. 사법 적극주의의 관점
        사안에 적용할 구체적인 법률이 없을 때 법관은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기본권의 경우는 헌법에서는 그 권리를 일일이 나열하기보다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 적용단계에 있어, 법률의 흠결이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해결을 사법부에서 하자는 주장이 바로 사법 적극주의며, 법원은 단순한 법의 적용기관이 아니라, 법해석을 통한 법 창조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해결방법은 유신헌법 당시에 헌법을 비방하기만 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을 놓고 법관들이 했던 고민에서 엿볼 수 있고, 벌금형에 대한 대법원 1978.4.25. 선고 78도246 전원합의체 판결에 있어서 ‘형벌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요청은 이를 자의로 해석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이익하게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막자는 데에 있는 것이지 입법정신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까지도 절대적으로 금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 사안에 있어서 대법원은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물론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명문규정을 억지로 고쳐서 적용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비판도 있다.
        한편 대법원은 위 판례 이후,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신청이 늘어남에 따라 호적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 전까지 적용할 허가 기준 등을 담은 호적예규 제716호를 9월 6일부터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이 만 20살 이상으로 혼인한 사실이 없고, 자녀가 없으며,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고통 받고 반대의 성에 대해 귀속감을 느껴온 사정이 인정돼야 하며, 성전환 수술을 받아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고, 성의 재전환 가능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하다고 인정될 경우 성별 정정을 허가하도록 했다. 또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경우에는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면제를 받아야 한다. 대법원은 병역을 피하거나 범죄를 은폐하려는 등의 목적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지방병무청과 경찰관서, 금융기관에 각각 병적·전과·신용정보 조회 등을 하도록 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또 성별 정정 허가신청을 할 때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가 성전환증 환자임을 진단한 진단서나 감정서,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 부모나 직계존속 등의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했다.4)


Ⅶ.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에 대한 반대의 관점
        찬성의 관점은 “천부인권”으로 요약되므로, 여기서는 반대의 관점만 살펴본다.
        국민일보 6월 23일자 기사를 살펴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종순(충신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을 인간이 법으로 전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목회자들과 신학자들도 대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성정체성에 대한 신학적 성서적 윤리적 가치 판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장 문시영(남서울대) 교수는 "이번에 대법원은 법률의 잣대로 말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회적 의사소통 과정을 생략해버렸다"면서 "이 문제에는 단순한 호적 표기 정정으로 가두어둘 수 없는 가치관의 문제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이번 문제는 성정체성, 가족관계를 비롯한 사회적 질서, 종교와 문화 등 복잡하고도 심층적인 논의들이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한 사회적 담론화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대법원의 결정에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성락교회 지형은 목사는 "성은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신 섭리"라며 "소수자 보호에 따라 성전환자의 권리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일부 진보단체들의 요구를 대법원이 너무 쉽게 수용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날 성정체성이 허물어지고 유니섹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완화되면서 성전환에 대해서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됐다"면서 "기독교계는 먼저 신앙적 윤리적 가치 판단을 정립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반대의견은 주로 특정 종교 공동체에서 주장되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그들의 종교 경전에는 적혀 있지 않다. 다만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만 나오는데,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위기 18장 22절).’다. 설사 이들의 주장이 성서에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는 없다. 법은 종교적인 가치, 도덕적인 가치와는 별개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Ⅷ. 외국의 사례5)
        1952년에 세계 최초로 현대적 의미의 성전환 수술이 이뤄졌고, 미국에서는 연간 1000여건의 성전환 수술이 행해지고 있다는데(주간조선, 성을 맞바꾼 아담과 이브, 1999), 외국에서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스웨덴이 유럽 최초로 1972년 성별의 확정에 관한 법률을 의결한 이후, 독일(1980), 이탈리아(1982), 네덜란드(1985), 터키(1988과 2002), 핀란드(2005)와 영국(2006)이 성전환법을 의결했고, 지난 2002년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만장일치로 성별변경을 허용했다. 성전환법이 없던 독일은 현재 한국의 상황과 동일했는데,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신청에 대한 입법을 기다려야 한다는 연방대법원의 불허 판결에 대해 연방헌법재판소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에 대한 기본권을 고려하면 성별기재를 변경할 헌법의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고, 그 이후 성전환법이 의결됐다. 그 내용은 최소한 3년 동안 이성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압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성별이 더 이상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인정될 때, 이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소해결방안과, 소해결방안의 요건과 혼인하지 않은 상태일 것, 성전환 수술을 했을 것, 미성년자가 아닐 것 등의 추가 요건을 충족하면 성별변경을 허용하는 대해결방안으로 나뉘는데, 현재 한국의 노회찬 의원이 준비되고 있는 성별변경에 대한 특별 법안은 대해결방안과 유사하다.


Ⅸ. 결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에 수녀님께서 앉으셨다. “수녀님, 성전환자 호적 변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을까란 짐작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판단할 문제라고 봐요.” 수녀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주위에서 성전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처지에 깊은 연민을 느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신부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으나 개인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대답에서 느낀 바가 많아서 다음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들의 성이 전환된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면 인정해야겠지.” 이 대답을 듣고 나서 의문이 생겨서 “저는 그 문제에 대해 어르신들께서는, 말세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어야지.”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신선함이었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비롯한 각종 국제적인 선언과 각 국의 헌법에 명시되어있는데, 그런 당연한 권리는 현실과는 먼 꿈같은 얘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권의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다고 들어왔는데, 얘기와 다른 세상에 오랫동안 살다보니 어느새 인권이라고 하면 다들 낯설어서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6월 26일 매일경제신문에서 사회 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변경 허용판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돌발질문을 보면 모든 이들이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음에 필자의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인권 실현의 걸림돌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한편, 서울 법대 양현아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지난 2002년 하리수씨가 등장하고 그의 그녀로의 호적 정정 허가 등이 이슈화 되었을 때, 그것은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뜻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남성상, 여성상의 재확인이었다는 점은 사실이고 고려할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진보를 가장한 역사의 퇴보일까? 여기서부터 필자는 진정한 정의(正義)와 인권의 정의(定義)에 대해 고민하고,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들은 보수(保守)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은 허상이었나 하는 답답함을 표현하며 짧은 연구를 마친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0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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