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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군대를 없애려는가? 2008.11.

나는 왜 군대에 가기 싫은가?

10월 1일 국군의 날. 테헤란로를 행진하는 ‘완전 무장’ 군인과 탱크 앞에서 나는 벗었다. 무기 하나 숨길 수 없는 알몸으로 ‘완전비무장’을 표현했다. 쿠키로 만든 총을 맛있게 먹으며, 무기와 군대 없는 세상은 달콤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다툼이 싫다.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 그것은 소박한 꿈이었지만 살면서 그것이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TV에서 연일 보도되는 사건 사고, 피로 물든 전쟁과 분쟁의 소식들.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버젓이 전파를 타고 뉴스에 방영되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에서 선을 넘었다 안 넘었다 골을 넣었다 안 넣었다 시비 붙으면, 그냥 선 넘었다고 골 안 넣었다며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인권은 타협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학내 종교 자유를 외치며 어려운 싸움을 이어갔지만, 내게 그것은 당연한 무엇일 뿐, 새롭고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도 미션스쿨에서 종교 의식이 강제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원했던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게는 아직도 무척 당연한 것일 뿐이다 군대 문제 역시 내게는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물 대포가 쏟아지던 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전경에게 잡혔다. 머리는 샌드백이 되고 얼굴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고, 옷과 시계는 뜯어지고,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고. 경찰에서 풀려난 후, 군대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전의경 문제부터 시작하여 군사제도가 가진 모순을 들춰내고 싶었고, 군대를 없애기 위한 선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2년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군대에서 총을 들고 살상의 기술을 훈련하여 전쟁에 소용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전쟁’을 전제한다. ‘상상된’ 적이라는 개념이 그렇듯이 공격과 방어의 개념도 상대적이다. 또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자기 정당성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몽상가라고 부른다. 철없는 이상주의자라 해도 좋다.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군대, 왜 생겼을까?

원시사회에도 자기 생존을 위해 꼭 싸워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어는 우리의 이익을 위한 공격으로 변했고, 무기의 발달과 국가의 성립으로 직업군인제도와 국민개병적 군대가 만들어졌다. 이제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 다른 게 아니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역사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한국이 언제 가장 큰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폭력으로 죽은 한국 국민의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언제였는지. 완전히 같은 시대였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라. 군대가 강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지 않고 정복의 역사를 썼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남한 군사력이 막강했다면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에 따라 선제공격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군대는 스스로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만들었다.

세계에는 약 2,130만 명의 군인이 있다. 비정규군을 더하면 훨씬 많아진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51.6%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1분에 12억 원을 쓰는 셈이다. 세계는 군대 유지를 위해 매년 1,100조 원을 버리며,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즐거운 세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것처럼 발표되면, 다른 나라에는 좋지 않은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이익이 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 내용이다. 권력자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전쟁을 결정하면 총알받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군대에 가고, 배부른 고민이라며 병역거부자를 미워한다.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정부는 길 가는, 집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가 60만 대군을 만들었다. 그리고 100일 동안 5만 명을 굶어 죽이고 얼어 죽였다. 현재도 우리 군은 전쟁 없이도 매년 500명을 죽인다. 그들은 ‘애국’의 명분 아래 헛되이 죽은 희생양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덤 앞에서 애국심을 다질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힘을 합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군대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그 역사와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북 분단과 강대국들로 둘러 쌓인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인해 병역의무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왔고, 사람들은 병역의무의 형평성과 병역기피의 방지에만 관심을 집중하며, 군대 폐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국군의 날 탱크와 전투기를 아기에게 보여주며 박수 치는 부모가 ‘평화’ 누드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북한의 비열함을 욕하면서 3배 많은 간첩을 보내는 국방부와, 군대 폐지를 주장했더니 온갖 욕과 자살 권유 글을 쓰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어떤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에게 심하게 맞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요즘 엄마를 때린다. 그리고 “맞았으니 이제 빌어야지” 한다. 평소 아이는 친구 잘못을 지적하면 받을 수 있는 칭찬스티커를 거부했는데, 어느새 옳고 그른 것을 ‘맞았는가?’란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모든 곳이 군대다. 폭력과 상명하복의 문화가 가족, 학교, 회사, 국가기관을 휩쓸고 있다. PC방에는 죽고 죽이는 게임들만 가득하고, TV를 켜면 김제동 씨가 상관의 아내를 아줌마라 불렀다가 영창에 간 얘기를 하며 웃고, 원더걸스는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친구” 육군 홍보 노래를 부르고, 연예인의 군 입대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KBS에서 한겨레에 이르기까지 “오늘도 우리의 씩씩한 장병들은 국토 방위를 위해 군복무에 헌신하고 있다”는 보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사흘 만에 719명의 시민이 간첩으로 몰려 숨진 거창학살. 희생자 가운데 330명이 14세 미만 어린이였지만, ‘죽여’ 명령하자 군인들은 어린이도 간첩이겠거니 모두 죽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중의 15%가 본인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겠다 대답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침공에서는 95%의 군인이 적군을 죽일 각오를 하고 있었다. 세계도 군대다. 우리는 무조건 반사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가 되고 있다.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나?

사람들은 ‘나라는 군대가 지킨다’고 착각하지만, 나라는 온 국민이 함께 지킨다. 군대가 없어도,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는 안 망한다. 그런데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아도,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군인들이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채 24시간 나라를 지켜도, 부모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그리고 강대국이 쳐들어오면 대한민국에 군대가 있어도,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우리는 국가 재정 전부를 국방비에 투자해도 중국의 군사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건 국방력의 대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 없이 안보 없다고 말한다. 왜? 군대 갔다 오면 알게 될까?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개 개인적 경험담이다. 군대가 왜 필요한지, 군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부족하다. 더군다나 군대는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사람들은 왜 '옆집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 '외국인'은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까?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왜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는 걸까?

세계 경제대국이며 군사강국인 우리가 먼저 군대를 없앤다면, 좁게는 동북아시아, 넓게는 세계가 평화롭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에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 이라크 침공이 가능했을까? 만약 쿠웨이트가 미국에게 기지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과연 이라크 침략이 쉬웠을까? 전쟁을 없애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전쟁을 포기하면 된다. 도대체 어느 국민이 반대할까? 그러나 모든 국가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느 국가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 강국이 모범을 보이면, 다른 나라가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스스로 핵무기를 버리면, 일방적으로 버리면, 군비경쟁은 사라진다. 따라서 미국은 전 국방비를 폐기하라. 전쟁을 포기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경찰뿐이다. 이것으로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면 충분하다."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군대 없는 나라는 가능하다

2001년 12월 2일, 스위스에서는 ‘군대 없애기’ 국민투표가 시행됐다.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투표에 오른 ‘군대 없애기’의 지지율은 21%에 그쳤지만,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자 적어도 군비가 축소되었다. 군부 독재와 내전으로 얼룩진 중남미의 상황은 어떨까?
코스타리카는 “항구적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평화 헌법을 가지고 있다. 1949년 6주 간의 내전으로 2000명이 죽자, ‘군인의 수만큼 선생님을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대를 없앴고 국가 예산의 1/3을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중남미에서 가장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는 상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중남미를 앞마당으로 생각하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나라에 해병대를 앞세워 침략하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평화를 위해 모두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주변 국가의 분쟁까지 해결한다. 코스타리카 정치인들은 내전이 지속되는 중남미 국가들을 찾아가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진행했고, 그 결과 평화합의를 성립시켜 내전을 끝마쳤다.

외국의 침략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코스타리카 시민은 "무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낳는다" "군대를 가지면 다른 나라에 간섭하게 된다" "국방비를 교육비나 의료비로 돌리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휴전 상황 아니냐?"는 반론은 병역비리와 특혜, 20만 명의 공익요원, 후방에서 삽질하는 군인 앞에서 무의미하다. 북한의 침입을 걱정한다면, 왜 포크레인 한 대가 하루 할 일을 중대가 붙어 몇 날 몇 일 하는 걸까? 우리는 군사 독재를 거치며 몸을 불린 군대를 비판 없이 유지하며, 공짜로 부리는 인력을 철저히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10,000명 모아 군대 없애자 
"전쟁에 반대한다" "군대를 없애자" 외쳐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평화조약도 만들었지만 전쟁은 반복된다. 전쟁을 없애는 최고의 효과적인 방법은 시민의 군대 거부다. 매년 700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지금까지 1만 명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전과자가 되었지만, 그 선택은 개인적 의미를 가질 뿐,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넓히고 싶다. 그래서 나와 함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입대 거부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고, 현재 26명이 모였다. 올 해 20만 명이 군 입대를 하는데, 그 중 10,000명이 군대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군축은 가능하다.

결과는 달콤하더라도 과정은 눈물로 가득할지 모른다. 만약 군대 거부 캠페인이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는 병역기피죄로 감옥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또 전과자가 되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삶을 살아갈 확률이 크다. 더 많은 사람이 큰 부담 없이 군대 거부를 외칠 수 있게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와 친구들은 한국에서 군사 제도가 없어지는 날 헤어지기로 했다.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란 문구를 새긴 티셔츠 한 벌로 올 여름을 보낸 나는, 언론매체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고,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갔다. 하루에 1,000개가 넘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고, 최대한 모든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논의한다. 군대 거부 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군대 거부를 제안하면 사람들은 ‘왜 내가 나서야 해? 난 그냥 조용히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야!’ 생각할지도 모른다. 군대 거부는 ‘나’보다 ‘우리’를 위한 행동이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을지도 모를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지만 ‘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으니까! 내 가족과 친구가 힘드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힘들게 겪어온 과거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믿기에 다른 즐기고픈 일을 제쳐두고 나서게 된 것이다. 감옥에 가는 길 외에도 각자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참 많다. 여러분도 함께 하자. (손전화 010-4424-0419, 홈페이지 club.cyworld.com/armyno)

'평화'택시회사로 병역거부 전과자를 고용한다. '평화'당을 만들어 우리가 직접 '평화'헌법도 만든다. 그리고 탱크 위에 올라 손 흔드는 사람이 아닌, 고통 받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 전세계가 우리를 따라 군대를 없앤다.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꿈일까?

"군대 없애자"는 주장은 무척 간명해서 계획도 힘도 없어 보이지만, 프라하의 봄은 폭력 없는 미래를 보여줬다. 아무 훈련도 안 받은 체코 시민들이 소련군에 대항하여 병사의 총구에 꽃을 꽂아 주며 평화를 지켰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인도에서 소금의 제조, 판매를 독점하는 소금세법을 시행하려 하자, 간디는 직접 바다로 가서 소금을 만들어 쓰겠다며 행진을 시작했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간디는 혼자가 아니었고, 17년 후 인도는 독립했다..

당신은 어머니, 아버지를 죽이는 연습을 할 수 있는가? 따지고 보면 적군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우리는 대체 왜 싸워야 하나?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군대 없는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나 혼자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가 '우리'가 되는 순간 그 주장은 매우 현실적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전쟁 없는 세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누군가 우리를 폭력으로 정복하겠다면,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탱크 앞에 서자. 저항하는 국민은 죽일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다. 평화를 선택하자.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3 | 트랙백(1) | 덧글(3)

'강의석을 위한 비판'은 이제 그만 2008.10.


안녕하세요. 한국의 평화활동가 친구들. 강의석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저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고 얼른 확인하라는 친구들의 문자와 전화를 받고 들어와 보니 메인 화면에, <군대 없애는 '알몸쇼' 실패했습니다>란 기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폭력성을 언급하며, 제게 공개편지를 쓰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삶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를, 문제제기된 방식으로 했으니까요. '언론노출증'을 지적하면서 전화, 편지, 만남 등의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언론'을 이용한 까닭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논의 지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쓴 글이라 하지만, 글 내용과, "실패했습니다" "난센스입니다" "진정성은 없다"는 단정적인 어투를 보면 결국 저와 제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과 자기 운동 방식에 대한 오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저는 평화활동가들이 '평화 난장'을 연다고 해서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공연도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제게 발언과 함께 총 맞는 연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왜였을까요?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다른 사람도 있었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민도 많았는데 왜 '강의석'이 발언과 퍼포먼스를 해야 했을까요?
 
사흘 뒤, 저는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정치 선전 다큐멘터리 <군대?> 제작을 통해, 영화 만들기의 기쁨에 빠지고 동시에 군 입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 한홍구 선생님의 <군사주의와 한국사회> 수업을 청강하고,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국방부 자료를 얻어오고, 평화활동가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 밥도 같이 먹고 이사도 도와 드리며 운동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무박이일 군대 토론 난장을 열고, 전의경 폐지 연대를 만들며 평화활동가와 함께 활동하던 중,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현역 의경이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은신처에 숨어있을 때, 기자회견 한다고 하길래 그 사실을 기자에게 알렸습니다. 제 행동 때문에 은신처에 기자들이 몰려왔고, 경찰들도 모여 들어 병역거부를 선언한 의경이 체포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기로 생각을 바꾼 부모님의 마음이 또 흔들렸고요.
 
그 때 저는 평화활동가에게 전화 몇 통을 받았는데 큰 소리로 욕을 먹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기자회견은 조금 연기되어 진행될 수 있었고,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다음날 새벽 농성장에 찾아가 사과했습니다. 평화활동가들은 아직 제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 된다며 이따가 연락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농성이 끝날 때까지 저는 아무런 연락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농성장에 있던 친구가 해 준 얘기는 놀라웠습니다. 그 친구의 카메라가 '강의석' 카메라이기 때문에 촬영할 수 없고, 그 친구도 '강의석' 친구이기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고, 강의석은 '프락치'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쟁 없는 세상'이라는 같은 목적 아래 활동을 하다 보니 평화활동가와 마주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인사를 건네면 무시하는 평화활동가를 보며 당황하기를 한 달, 평화활동가들이 주최한 '평화캠프'가 진행되었고, 미리 참가신청을 해 둔 저로서는, 평화활동가와 소통이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캠프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다시 인사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고, 캠프 이후에는 국군의 날 대안 퍼레이드 회의에 참여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집회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평화활동가에게 연락도 안 오고, 전화해도 안 받아서, 같이 하자고 구걸하는 식으로까지 함께 활동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도 계속 연락이 안 돼서 공동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뭘까요? 왜 힘을 모아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지 않고, 미워하고, 갈라서는 건가요? 제가 '전쟁 없는 세상'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거란 바람을, 이미 만들어진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 군대 없애기, 또는 징병제 없애기를 위한 담론 형성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요? 제가 ‘언론노출증’과 '진정성'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이야 말로 달이 아닌 손가락을 보는 것 아닌가요?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게 핵심인데, 왜 스포트라이트에만 집중하는 것인가요?
  
오랫동안 평화활동을 해 온 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평화운동의 장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 마디 하는 것보다, 평화활동가가 한 마디 하는 것에 사람들이 더 귀 기울지도 모르고, 저 보다 훨씬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자기의 영향력과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며, 강의석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답답합니다. 함께 합시다. 오해 있으면 만나서 얘기하며 풀고, 화나면 화도 내고, 욕하고 싶으면 욕도 하고. 술 한 잔 해요. 하지만 여전히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과 활동은 존중하겠지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와 함께 군대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선적인 저 때문에 활동을 그만 두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로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싫고, 공동체의 결정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무시하는, 사람 무시하고 뒤에서 남 욕하는 사람들과 그 어떤 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국군의 날, 언론이 크게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친구들과 함께 국군의 날 퍼레이드 장소에서 발레로 '평화'를 표현했고, '무기 없는 세상은 달콤하다'는 의미로 총 모양 쿠키를 나눠줬습니다. '평화' 누드도 했습니다. TV에서 보시기에 '비무장'한 시민이 '완전무장'한 탱크를 멈췄다는 것을 느끼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기자 18분에게 "15분 뒤 현대백화점 앞 평화 누드"란 단체문자를 보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찰이 도청 할까봐 작업실에서는 제대로 얘기하지도 못 했고, 문자 메시지에도 암호를 섞어 보냈으며, 언론에 알려 들킬 위험을 높이기 보다는, '평화' 발레와 누드를 우리가 직접 촬영해서 언론과 시민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총 11명의 촬영팀이 구성됐고, 고용된 인원이 4명, 그 외 인원은 졸업작품을 만들거나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으로 함께 했습니다. 테헤란로에서 수 차례에 걸친 촬영 리허설을 진행했고, 지금은 작업실에 모여 영상을 편집하며 우리가 던지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회운동의 분명한 목표는 많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 명에게 알리는 것보다, 한 명의 지지자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박태환씨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비무장' 알몸으로 '완전무장' 탱크를 막은 행위를 통해서 저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문자와 전화를 받고, 10000명이 넘는 사람이 미니홈피를 다녀갑니다. 전화가 오는 도중에 전화가 세 개씩 오고, 수신함이 가득 차 문자가 지워지면서 답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대한 모든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군대 없으면 너네 엄마 누가 지키냐 미친 새끼야" "위선자" "가기 싫으면 깜방 가던가" 등의 문자도 많지만, "모임 때 놀러 가고 싶어요" "저도 동의함" "군대가 정말 꼭 필요할까요? 평화가 최고인데" 등의 문자가 더 많고, 함께 병역거부 운동을 끝까지 하겠다는 친구들도 새로 생겼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쾌적하고 널찍한 작업실은 TV를 보고 연락주신 분이 외국에 간다며 남겨 주고 가신 공간입니다. 총 쿠키를 만들 때에도, 모르는 분이 자기집 오븐을 보내 주셨고, 영화를 만들자고 하니 다양한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거리에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란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한편, 방송, 신문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함께 할 사람을 모으는 데 힘쓰고 있으며,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국군의 날, 저는 12시간 동안 구덩이 속에서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평화활동가들이 눈이 빠져라 새벽까지 무기공부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밤 새며 전쟁사를 공부했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장 국방예산 1조 원을 줄여서 국제아동구호기금으로 돌리면 좋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출근길에 "군대가 필요해?"라는 질문을 몸에 새겨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제가 쓴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는 글의 핵심은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함께 갈 것과 국군의 날 반대 행사에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라는 질문을 자유롭게 던져보고 싶었고,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병역 특례 혜택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전투력이 강한 태권도 메달리스트가 병역에서 면제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문장은 농담이었는데, 진담으로 받아 들이시는 분들을 보며 저도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푸념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누구에게든, 군대를 없애기 위해서 입대 거부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700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지만, 그 선택은 개인적 의미를 가질 뿐,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연결고리를 넓히기 위해 군대 대신 감옥 가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병역거부는 감옥행을 의미하고, 병역거부자들은 출소 이후에도 평생 전과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고, 그 가족들이 겪을 아픔은 참으로 처절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사필귀정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종교자유'를 주장하면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온 가족이 울었지만, 퇴학 무효 판결을 받고 학교 내 예배 선택권을 보장받았으며,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저는 다만 제안을 할 뿐입니다.

 
"군대를 폐지합시다"라는 주장은 무척 간명해서 계획도 힘도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을 아시나요? 60년대 말, 아무 훈련도 안 받은 체코 민간인들이 소련군에 대항하여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병사의 총구에 꽃을 꽂아 주며 평화를 지켰습니다. 3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간디가 인도에서 이끈 비폭력 저항운동은 어떤가요? 굴복하지 않는 국민은 죽일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선택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아래 글로 첨부합니다. 행복합시다.
 
 
 
군대 꼭 필요해?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만든다. 어느 시대, 어떠한 전쟁에서도 외국을 침략하는 나라는 자기가 욕심이 많아서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세계를 대량파괴무기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9년에 걸쳐 32만 명을 파병했고 그 대가로 10억 달러를 받았던 베트남전쟁은 어떤가. 그들은 도대체 왜 베트남에서 싸워야 했을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 잘못을 교과서에서 지웠듯이, 미국도 한국도 침략의 역사를 지우고 평화의 가면을 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8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지구촌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날은 겨우 26일뿐이다. 90년대 보스니아 전쟁, 21세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2008년 그루지야 전쟁. 우리의 삶은 평화와 너무나 멀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은 국가와 국민 사이의 오랜 전쟁이었다. 100년 동안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억 970만 명인데, 시민이 6,200만 명으로 군인보다 더 많다. 1990년대 전반기의 전쟁 희생자 550만 명 가운데 75%가 시민이다. 즉, 국가가 외국인이 아니라 국민을 살해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필리핀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과 싸워본 일이 한 번도 없고 필리핀 사람들만 죽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한다고 말하지만, 대한민국 군대는 제주도에서 거창에서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총살하고 민주화 정부를 뒤엎었고, 현재는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현실'을 강조하며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가 없으면 안보가 불가능하며, 군대가 사회의 안전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머릿속 얘기가 아니라, 홉스의 책을 근거로 하는 얘기도 아니라, 역사의 기록에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듣고 싶다.
 
대한민국사를 봐도, 군사적으로 가장 강했던 시기에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6․25 전쟁 당시에도 한국의 군대가 북한의 군대보다 강했다면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공공연히 북진통일을 주장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게 ‘꿈’ 아닐까.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병을 치료하려면 1년에 15조 원이란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가 공상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1년에 1,100조 원을 군대에 쏟아 붓고 있고, 이라크 침공에는 4,000조 원 이상이 쓰였다. 어느 나라든 먼저 군비 경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외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러지 않는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서로에 대해 방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대’ 때문에, ‘애국심’과 ‘국익’ 때문에 이라크는 망했다. 군대는 우리를 이웃국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공격의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웃나라를 침략하며, 우리의 삶조차 위협한다. 전쟁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결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남미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9년 제정된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 제도로서의 군대는 폐지한다.”고 말한다. 유럽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27개 나라도 군대를 없앴지만,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략하지 못한다. 군대를 없애고 중립을 지키면, 오히려 그 나라를 침략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군대 거부로 인해 당장 감옥에 가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울리게 되더라도, 그 누구도 총을 들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평화는 선택이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23 | 트랙백 | 덧글(0)

재미있는 대화

질문자=좋습니다. 당신이 평화주의자란 말이지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할머니를 공격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누가 저의 가엾은 늙은 할머니를 공격한다고요?
 
질문자=예. 당신은 지금 할머니와 함께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방에 침입해서 당신의 할머니를 막 공격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바로 그 옆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나는 아마 ‘할머니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방을 떠날 겁니다(말도 안 되는 질문 하지 말라는 뜻).
 
질문자=그렇게 대답하지 마시고요. 이건 정말 진지한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놈이 총까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도 총이 있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연히 그놈을 쏘아버리지 않겠습니까?
평화주의자=제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요?
 
질문자=예. 그렇습니다.
평화주의자=저는 폭력에 반대하기 때문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질문자=그러니까 가정이라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이겁니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이러면 되겠네요. 저는 그 사람이 쥐고 있는 총을 쏘아 떨어뜨리겠습니다.
 
질문자=어허, 그렇게 대답하면 안되지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당신은 총 솜씨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정확히 침입자의 총을 맞힐 수준이 안 된다고 치자는 이야기 입니다.
평화주의자=그럼 제가 총을 쏘면 안 되겠네요. 제가 총을 쏘다가 잘못해서 우리 할머니라도 맞히면 큰일 아닙니까?
 
질문자=허허. 참 귀를 못 알아들으시네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이 트럭을 몰고 있다고 칩시다. 당신이 차를 모는 길의 한쪽은 벼랑이고 다른 한쪽은 절벽입니다. 그런데 그 길 한가운데에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습니다. 지금 차를 세운다 해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저히 사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그런 경우라면 나도 모르겠네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질문자=질문은 제가 하는 겁니다. 당신은 모든 살인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라면서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습니까?
평화주의자=평화주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어쨌든 , 알겠습니다. 지금 제가 트럭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질문자=그렇다고 칩시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열심히 경적을 울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이가 길에서 피하지 않겠습니까?
 
질문자=아이는 스스로 걷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겨우 10개월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적은 고장 났습니다.
평화주의자=아이가 너무 어려서 걸을 수가 없다? 그러면 잘 되었네요. 저라면 차를 잘 몰아서 그 아이를 살짝 피해 가겠습니다. 애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가 그렇게 해도 아이를 칠 염려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질문자=그건 안 됩니다. 그 길은 당신이 피하지 못할 만큼 아주 좁습니다. 한쪽은 절벽이고요. 당신은 아이를 피할 수가 없다니까요.
평화주의자=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저는 절벽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가 제가 죽음으로써 아이를 구하겠습니다.
 
질문자=(잠시 침묵) 그렇다면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당신 차에는 지금 당신 친구도 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당신에게 친구까지 죽일 권리는 없는 것 아닙니까?
평화주의자 혹시 이 질문이 제가 평화주의자라는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질문자=당신 차에는 두 명의 생명이 타고 있고 상대방은 한 명 뿐이라는 겁니다. 그럴때 평화주의자로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두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면 한 생명을 포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화주의자=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만약 당신이 가정 속의 악과 진짜 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가정 속의 악을 택하라”고요
 
질문자=그게 무슨 뜻입니까?
평화주의자=도대체 당신은 왜 그렇게 평화주의자를 모두 없애버리지 못해 안달이냐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을 뿐 입니다.
평화주의자=좋습니다. 그럼 질문을 다시 정리해보지요. 나는 지금 내 친구와 함께 한족은 벼랑이고 한쪽은 절벽인 길을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제 앞에는 10개월 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지요?
 
질문자=바로 그겁니다.
평화주의자=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서 친구를 창문 밖으로 나가떻어지게 한 뒤 절벽 쪽에 가서 부딪히고, 아이를 한 번 친 다음, 죽음을 향해 절벽으로 질주하겠지요. 그리고 보나마나 그 절벽의 한쪽 끝 어딘가에는 우리 할머니 집이 있지 않겠습니다까? 그래서 내가 모는 트럭이 할머니 집 지붕을 덮친 다음 할머니 집 안방을 완전히 날려버리겠지요. 우리할머니는 아까 나쁜 사람의 공격까지 받은 후 아닙니까? 그쯤 되어야 끝이 나겠지요?
 
질문자=당신은 아직도 내 질문에 답을 안 했어요. 자꾸 피하려고만 할 뿐이지요
평화주의자=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이겁니다. 막상 그런 상황에 닥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가정으로 만들어진 질문은 가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당신은 계속 끝없는 조건을 붙여서 나를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가정 속에서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이상, 당신의 질문은 절대로 끝이 안 나게 되어 있어요. 결국 그 대답을 얻어낸 다음에야 당신은 이야기하겠지요. “평화주의는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야” 라고 말입니다.
  
 
* 이 대화를 소개한 사람은 반전 평화 운동가였던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입니다. 한글 번역본은 김두식, <평화의 얼굴: 총을 들지 않을 자유>에서 가져왔습니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9 | 트랙백 | 덧글(0)

태환아, 너도 군대 가 2008.9.

마린보이, 안녕! 초면인데 반말해서 미안. 너도 편하게 “바보야”하고 부르렴.
 
난 자칭(!) ‘영화감독’ 강의석이야. 비록 내 영화는 CGV에서 두 번 상영되고 막을 내렸지만, 2009년 2월 완성될 블록버스터 다큐 ‘군대?’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예정이지. 그렇게 되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 혜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야. 그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은 영화를 못 만들게 되고 또 혹시 모르지. 감옥에서 광우병 쇠고기 먹고 뇌송송 구멍탁 죽어버릴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22명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어. 5만 달러의 포상금, 죽을 때까지 매월 100만원 이상의 연금이 주어지는 것과 동시에 말야. 태환아, 너는 한국 야구가 세계 정상이 되는 순간을 지켜봤니? 난 ‘한국에서 어떻게 군대를 없앨까’ 밤샘 회의를 하던 중,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야구 금메달”이란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됐어(나도 팬이 많거든^^). 전승 우승하는 과정에서 승엽이 형은 ‘병역면제브로커’란 별명을 얻었고, 대호 형은 “아무래도 병역혜택이 걸린 준결승이 더 떨렸다.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밝히며 기뻐했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노력해서 딴 메달이 ‘징병면제’란 이름으로 선수들의 공적을 위한 하사품이 된다는 거야. 군 면제를 서비스로 받는 올림픽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로마시대 상대를 죽이면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노예 검투사가 떠오른다고 할까. 게다가 무엇이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것인지 그 ‘기준’도 불분명하고, 설령 국위선양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병역특례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몇 배 센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힘을 써야 할 군대에서 빠진다니 말도 안 돼!
 
헤어살롱에서 ‘GQ’ 8월호를 보니 네 친구 원더걸스가 나오더라. 해이해질 때마다 진영이 오빠가 바로 잡아준다며, “군대도 아닌데 좀 ‘빠지면’ 어때요?”라는 질문에 “아니에요. 군대만큼 중요해요”라고 답하던걸. 그걸 보고, 군대 자체가 중요한 조직과 직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고, 그것이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우리문화를 생각하면서 머리 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 (그래도 소개해 주면 감사할게^^;).
 
군대? 넌 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난 폭력을 막기 위함이란 이유로 포장된 군대로 인해 이 세상에 더 많은 폭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군사제도가 사라져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 나와 친구들이 군대 대신 감옥 가기 100인 캠페인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18명이 모였는데 네가 19번째 사람이 되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비무장은 아름답다!”는 누드 시위를 함께 해 보지 않겠니?
 
“잘생긴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더라도 그 누구도 너와 나를 죽일 수는 없는 것처럼, 헌법 앞에 사람이 있지. 그런데 헌법도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어. 수많은 청년들에게 원치 않는 병역의무를 강요하는 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무시하는 거고, 올림픽 선수와 일반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법 앞의 평등’을 깨버리는 거지. 태환아, 공익요원들이 20만 명이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너는 아니? 툭 까놓고 내가 2년 군대에 있었으니 너도 2년 낭비해야 한다는, 병역특례고 뭐고 태환이 너도 군대 가고, 여자도 군대 가라는 푸념 아닐까?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내 소중한 삶을 낭비하기 싫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소중하지만, 나도 딱 너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단지 그거 하나야. 참, 일촌신청 했는데 받아주렴 ^^ 술 고프면 문자 하나 보내고~♬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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