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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 종교자유?



헌법 위에 있는 미션스쿨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사립학교였고 미션스쿨이었다. 사립학교는 국가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나 법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공립학교보다 국가의 지원이 아주 조금 적으며, 학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매우 크다. 사립학교의 장점은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맞춤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학교 설립자나 교사의 주관에 치우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션스쿨은 특정 종교의 선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교 이념에 따라 세워진 많은 사립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다. 그리고 일부 학교는 종교 교육이나 종교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까?"
대한민국 헌법은 '예.'라고 답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소재한 미션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까?"
배움의 공간인 학교에서는 '아니요.'라고 답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연말에 고등학교에 배정받기 위한 원서를 작성한다. 그 원서에는 자기의 이름, 주소, 성적 등등을 기입하며,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도 기입했다. 그런데 종교와 상관 없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무작위로 배정된다.
무교인 나는 개신교 미션스쿨에 입학했고, 개신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선서를 하게 된다. 전교 1등으로 입학한 나는 선서 하기 몇 분 전에야 선서 내용을 받고, 다른 친구들은 내가 선서문을 읽으니 따라 읽을 뿐이다. 그리고 선서 내용은 개신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내용뿐인데,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게 된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번호 순으로 돌아가며 대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종교 의식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매주 1시간씩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종교 구절을 외워야 했다. 이 시간엔 매주 돌아가는 반별 성가합창도 있다. 3박 4일간의 수련회에도 종교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든 프로그램을 하기에 앞서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을 따라 행동하겠다는 생활수칙을 외워야 했다. 매주 1시간씩 받게 되는 종교 수업에서는 성경을 읽거나 사이비가 어떤 것인지 공부한다.
모든 학교가 그렇듯이 학급마다 회장과 부회장이 있는데, 부회장의 명칭이 종교부장이다.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출석해야 하며, 당선되면 종교 의식을 담당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학생회장과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규정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자로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로 인해 출마를 포기하게 되거나, 출마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종교를 강요하는 것과,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수단으로 여기게 하는 것, 부정적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혔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개신교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불교 동아리를 만들 수 없다. 자기가 가진 종교의 신앙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이상한 현실에서 당연시되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사적 자치 혹은 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사적 권리가 우월해진 자유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가 가지는 근본이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다. 하지만 권리를 배우지 못하고, 의무만을 강요 받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겐 어울리지 않다. 아래와 같은 말이 어울리며, 인권이란 단어는 더욱 멀어져만 간다.
"권리를 배우려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조직 속에 속하게 되면 두려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조직의 문화 속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며 그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학교에 교육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서 온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그것은 선택권으로 주어진다. 선택권이 없다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떠한가? 그들에게 자율적인 선택권이 보장되나? 그렇지 않다. 보충수업 참가여부, 교과목의 선택, 교복 강제 등등. 학생들의 선택권은 보장되지 못한다. 그 환경에서 학생들은 '어떤 것을 하면 안 된다'는 문장의 집합인 교칙으로 두발상태와 용의복장을 규제 받고, 별다른 잘못이 없어도 무자비하게 맞기도 하며,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에 묻혀 그런 것들에 대해 순종해버리고 있다. 심한 말로 한다면, '무비판적인 순종이 미덕'이라는 문화에 세뇌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종교의식이 강제적으로 행해지고 그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반항아이며 옳지 못한 학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것이 학생들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션스쿨에 입학하고 나서 종교 의식을 강제하는 것이 어이없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친구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용해진다. 비판한다고 바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종교 의식을 거부하려는 그들에게, '그래, 너희들의 종교도 보장한다. 하지만 건학이념이니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지 않겠니. 선서도 했잖아. 그리고 이건 종교가 아니고 선생님의 지시에 대한 거야'란 말로 회유한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비판할 마음을 포기하고 합리화한다. 종교 의식의 강제라는 현실이 '이걸 왜 해야 하지?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에서 이제는 '이건 당연한 거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합니다. 법원에서는 2007년에 사립학교가 학생들의 진정한 의사에 관계없이 기독교의식을 강제하는 등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나 학습권 등을 침해한 것은 사법상(私法上) 인격권의 침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러한 학교측의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학생에 대한 퇴학처분에 중대한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아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으나, 2008년 고등법원에서 1심 판결을 뒤엎고 학교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현실과 법 모두 인권과 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상대적인 약자인 학생들이다. 계속해서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방과 후에 선택적으로 종교 활동을 실시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종교교육은 실시하되, 종교 활동은 종교 기관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14:01 | 트랙백 | 덧글(2)

바보 강의석의 삶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3:12 | 트랙백 | 덧글(0)

강의석은 누구인가?

1. 강의석? wikipedia에서 인용한 내용을 수정.
2004년 6월 저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종교 예배를 강요하는 행위를 반대했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퇴학 처분 무효의 소를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학교 내 종교자유를 비롯한 인권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 교육청 앞 1인 시위, 피켓 들고 지하철 타기, 온라인 사이트 운영, 언론 인터뷰, 방송 출연, 거리 캠페인, 촛불집회, 부산~서울 국토대장정,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 손해배상의 소 제기, 국회 로비, 기금 마련 팥빙수 팔기 등등을 했고요.
2005년 9월  프로 권투 선수 자격을 땄고,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5년 10월, 강의석은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종교 활동을 강요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2007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학교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인정하며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해, 현재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고등학교 1, 2학년 때엔 왜 종교행사에 반대하지 않았나?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아 기독교 재단 사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입생 대표였던 저는 입학식 예행연습 10분 전에 "기독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선서문을 받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 자체가 나쁜 게 아니기 때문에 선서했습니다. 입학하고 나니, 학급 예배도 있고 수요일마다 전체 예배가 있었죠. 1학년 말에 학생회 회장, 부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출마하려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목사님과 상담했는데 교양으로 접해보라고 해서 교회에 가게 됐죠. 교회에 가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진실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학생회 부회장을 하려고 교회에 와서 이 사람들이 목적으로 삼는 것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힘들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1학년 말 선거에서 부회장이 됐고, 2학년 때도 그렇게 합리화를 시켰죠. 고 3 때 학생회의에서 학생회장이 되려면 교회에 나가야 된다는 조항을 만장일치로 삭제하기로 의결했는데 지도교사의 한 마디에 무시되었어요.
 
3. 다른 학교에 전학가라고 했는데, 왜 거부했나?
학교에서 교육과 종교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칠 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왜 종교가 들어와야 하느냐는 거죠. 종교와 교육은 별개라는 것이고 종교 교육을 하고 싶다면 신학대학에서 하면 되고, 고등학교에서 굳이 하고 싶다면 신학고등학교를 만들어서 하면 또 모르겠어요. 그리고 저는 종교와 상관없이 대광고에 남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고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교에 가서 그 자유를 누리고 싶지는 않았고 친구들과 함께 바꾸고 싶었어요. 한편, 종교를 이유로 전학을 갈 수 없고, 다만 거주 이전의 편법으로 전학을 갈 수 있습니다.
 
4. 단식을 한 이유?
그 당시에 제가 이 나태해지는 것 같았어요. 어떤 활동에 있어서는정말 열심히 했다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긴 하는데, 일반적으로 지쳐 있었고 밀려가는 그런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을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단식을 해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내 자신에게 전달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너무나 당연한 걸 주장하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당연한 것은 보이지 않고, 겉에 있는 것만 보여지게 되구요. 학교의 말이 진실인 양 보도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안의 진실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어요.
 
5. 고등학교 때 성적은? 왜 서울대학교인가?
수능에서 언수외 -19점, 사탐 -20점 해서 461점 받았습니다. 학교 2학년 때부터 1등해서 중학교 1등 졸업, 고등학교 1등 입학, 1학년 때 2등, 2학년 때 인문계 1등했습니다. 2학년 때 동대문구 수석을 한 번 했습니다.
대학을 가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편견에 젖어 있었고, 외국대학을 가기에는 준비가 적었고, 정치를 하고 싶어서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죠. 그런데 학생 인권 캠페인을 하다가 학교에서 퇴학됐습니다. '올 해는 대학 못 가겠다' 싶었는데 법원에서 가처분결정이 나와서 서울대 수시지원 마감을 이틀인가 앞두고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나처럼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법과 사랑에 빠져서 법대에 지원하려 했는데, 학교에 돌아와 보니 지역균형선발은 이미 사람이 정해져 있었어요. 다행히도 홈피를 잘 검색해 보니 특별전형이란 게 있었고, 평소 주말마다 장애인재활센터에서 봉사활동 했던 게 500시간 이상이라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단식하다가 학교에서 작은 약속 얻어 내고 다시 입시 준비를 했고, 수능은 몇 등급 이상이면 된다기에 논술만 공부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지원한 적은 없고 서울대학교에만 지원했습니다.
 
6. 종교에 대한 생각?
저는 무교입니다. 그 누가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합니다.
 
7. 교회장학금을 받았다던데?
전교 1등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받았습니다. 장학생 모임에 갔는데 찬송가를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설교를 하십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께서 후원을 해주시는 거라고 하더군요. 뛰쳐나오려고 했는데, 무례한 것 같아 참았습니다. 나중에 돈으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장학금 전액을 반납했습니다.
 
8. 별명이 왜 '바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바보는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낮아 보이지만 쉽게 다른 사람과 대화로서, 관계로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고요. 바보만이 있는 세상은 멍청하고, 이해관계 그런 걸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실수는 많겠지만, 전쟁 같은 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저를 모르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다, 더 배워야 된다는 취지입니다.
 
9.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휴학한 이유?
법대를 선택했던 이유가 그 당시에는 반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법을 미친 듯이 좋아하고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다가 재판 과정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깐 법이라는 것이 확실한 잣대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이라는 것이 과정을 통해서 재판으로 나타나게 되는 건데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거짓말도 하고 그런 것들 보면서 법이라는 것이 순수하고 깨끗한 것만은 아니구나. 크게 깨닫고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 자유 캠페인하고 학교생활을 두 가지를 하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벅차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우선은 학교 내 종교 자유 캠페인을 활성화 시키고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이제 다시 학교생활로 돌아오자. 이런 의미로 휴학을 했는데 휴학을 하고 나서는 두 가지 모두 다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10. 택시와 호스트바는 왜?
길 가다 택시가 지나가는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태운 손님이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제가 관심을 보이니까 한 번 오라고 했어요. 택시를 관둔 후에 그 사람을 찾아간 거죠. 택시 손님 중 보험회사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보험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호기심이 생겨 해보고 싶어지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냥 해봐요.
 
11. 영화를 찍었다던데?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와 청춘멜로드라마 <뜨거운 사랑>을 만들었어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하신 교수님과 아프리카 문화 수업을 수강한 대학생들이 함께 30일 간 아프리카로 떠나, 사막의 나라 나미비아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오바힘바족과 함께 보냈던 3박 4일을 보여 줍니다.<뜨거운 사랑>은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가진 대학교 신입생의 연애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표현했고요. 애인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데 누군가의 작업에 흔들리는, 애인이 다른 이성과 자주 만나는 등의 상황에 따라 인물 심리가 미묘하게 변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12. 언론노출증?
기회가 된다면 그 기회를 잘 활용해서 종교자유 사안은 물론이고, 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도록, 그 시간과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집중하려 합니다.
 
13.악플에 대해?
우선은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냥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떤 생각이든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유 존중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14. 정치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이 활동을 한 것?
세상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저는 그 분들을 위한 거름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면 진짜 모두가 행복할까? 의문이 듭니다.
 
15. 류상태 선생님?
제가 퇴학당했을 때 퇴학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가 교목실장 자리에서 평교사가 되시고, 안 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학교가 계속해서 종교의식을 강요하자 그러면 안 된다며 사표를 내신 분이 류상태 선생님이십니다. 그저 답답합니다. 가끔 강연도 하시고, 책도 쓰시고, 여러 일을 통해 자기의 뜻을 펴고 계십니다. 가끔 뵐 때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 넌 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라. 네가 오히려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행복하다고 믿을 뿐입니다.
 
16. 군대는 안 가나?
저는 자유롭게 살고 싶으며, 군대가 오히려 나라의 평화를 해친다는 생각에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고, 따라서 군대에 갈 수 없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긴 글로 썼습니다.


17. 지금은 뭐해?
법적인 싸움을 위해 사법시험 준비 중입니다. 학교 내 종교자유 소송과 함께 병역거부자 10000명 모으기(11/20 현재 26명)를 하고 있습니다.
 
18. 한자이름, 영어이름, 혈액형과 생일?
姜義錫, Kang Wesuck, B형, 1986.8.25. 오전 11시.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9 | 트랙백 | 덧글(0)

나는 왜 군대를 없애려는가? 2008.11.

나는 왜 군대에 가기 싫은가?

10월 1일 국군의 날. 테헤란로를 행진하는 ‘완전 무장’ 군인과 탱크 앞에서 나는 벗었다. 무기 하나 숨길 수 없는 알몸으로 ‘완전비무장’을 표현했다. 쿠키로 만든 총을 맛있게 먹으며, 무기와 군대 없는 세상은 달콤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다툼이 싫다.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 그것은 소박한 꿈이었지만 살면서 그것이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TV에서 연일 보도되는 사건 사고, 피로 물든 전쟁과 분쟁의 소식들.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버젓이 전파를 타고 뉴스에 방영되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에서 선을 넘었다 안 넘었다 골을 넣었다 안 넣었다 시비 붙으면, 그냥 선 넘었다고 골 안 넣었다며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인권은 타협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학내 종교 자유를 외치며 어려운 싸움을 이어갔지만, 내게 그것은 당연한 무엇일 뿐, 새롭고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도 미션스쿨에서 종교 의식이 강제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원했던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히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게는 아직도 무척 당연한 것일 뿐이다 군대 문제 역시 내게는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물 대포가 쏟아지던 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전경에게 잡혔다. 머리는 샌드백이 되고 얼굴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고, 옷과 시계는 뜯어지고,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고. 경찰에서 풀려난 후, 군대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전의경 문제부터 시작하여 군사제도가 가진 모순을 들춰내고 싶었고, 군대를 없애기 위한 선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2년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군대에서 총을 들고 살상의 기술을 훈련하여 전쟁에 소용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전쟁’을 전제한다. ‘상상된’ 적이라는 개념이 그렇듯이 공격과 방어의 개념도 상대적이다. 또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자기 정당성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몽상가라고 부른다. 철없는 이상주의자라 해도 좋다.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군대, 왜 생겼을까?

원시사회에도 자기 생존을 위해 꼭 싸워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어는 우리의 이익을 위한 공격으로 변했고, 무기의 발달과 국가의 성립으로 직업군인제도와 국민개병적 군대가 만들어졌다. 이제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 다른 게 아니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역사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한국이 언제 가장 큰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폭력으로 죽은 한국 국민의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언제였는지. 완전히 같은 시대였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라. 군대가 강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지 않고 정복의 역사를 썼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남한 군사력이 막강했다면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에 따라 선제공격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군대는 스스로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만들었다.

세계에는 약 2,130만 명의 군인이 있다. 비정규군을 더하면 훨씬 많아진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51.6%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1분에 12억 원을 쓰는 셈이다. 세계는 군대 유지를 위해 매년 1,100조 원을 버리며,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즐거운 세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것처럼 발표되면, 다른 나라에는 좋지 않은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이익이 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 내용이다. 권력자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전쟁을 결정하면 총알받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군대에 가고, 배부른 고민이라며 병역거부자를 미워한다.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정부는 길 가는, 집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가 60만 대군을 만들었다. 그리고 100일 동안 5만 명을 굶어 죽이고 얼어 죽였다. 현재도 우리 군은 전쟁 없이도 매년 500명을 죽인다. 그들은 ‘애국’의 명분 아래 헛되이 죽은 희생양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덤 앞에서 애국심을 다질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힘을 합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군대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그 역사와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북 분단과 강대국들로 둘러 쌓인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인해 병역의무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왔고, 사람들은 병역의무의 형평성과 병역기피의 방지에만 관심을 집중하며, 군대 폐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국군의 날 탱크와 전투기를 아기에게 보여주며 박수 치는 부모가 ‘평화’ 누드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북한의 비열함을 욕하면서 3배 많은 간첩을 보내는 국방부와, 군대 폐지를 주장했더니 온갖 욕과 자살 권유 글을 쓰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어떤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에게 심하게 맞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요즘 엄마를 때린다. 그리고 “맞았으니 이제 빌어야지” 한다. 평소 아이는 친구 잘못을 지적하면 받을 수 있는 칭찬스티커를 거부했는데, 어느새 옳고 그른 것을 ‘맞았는가?’란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모든 곳이 군대다. 폭력과 상명하복의 문화가 가족, 학교, 회사, 국가기관을 휩쓸고 있다. PC방에는 죽고 죽이는 게임들만 가득하고, TV를 켜면 김제동 씨가 상관의 아내를 아줌마라 불렀다가 영창에 간 얘기를 하며 웃고, 원더걸스는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친구” 육군 홍보 노래를 부르고, 연예인의 군 입대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KBS에서 한겨레에 이르기까지 “오늘도 우리의 씩씩한 장병들은 국토 방위를 위해 군복무에 헌신하고 있다”는 보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사흘 만에 719명의 시민이 간첩으로 몰려 숨진 거창학살. 희생자 가운데 330명이 14세 미만 어린이였지만, ‘죽여’ 명령하자 군인들은 어린이도 간첩이겠거니 모두 죽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중의 15%가 본인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겠다 대답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침공에서는 95%의 군인이 적군을 죽일 각오를 하고 있었다. 세계도 군대다. 우리는 무조건 반사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가 되고 있다.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나?

사람들은 ‘나라는 군대가 지킨다’고 착각하지만, 나라는 온 국민이 함께 지킨다. 군대가 없어도,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는 안 망한다. 그런데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아도,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군인들이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채 24시간 나라를 지켜도, 부모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그리고 강대국이 쳐들어오면 대한민국에 군대가 있어도,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우리는 국가 재정 전부를 국방비에 투자해도 중국의 군사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건 국방력의 대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 없이 안보 없다고 말한다. 왜? 군대 갔다 오면 알게 될까?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개 개인적 경험담이다. 군대가 왜 필요한지, 군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부족하다. 더군다나 군대는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사람들은 왜 '옆집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 '외국인'은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까?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왜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는 걸까?

세계 경제대국이며 군사강국인 우리가 먼저 군대를 없앤다면, 좁게는 동북아시아, 넓게는 세계가 평화롭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에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 이라크 침공이 가능했을까? 만약 쿠웨이트가 미국에게 기지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과연 이라크 침략이 쉬웠을까? 전쟁을 없애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전쟁을 포기하면 된다. 도대체 어느 국민이 반대할까? 그러나 모든 국가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느 국가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 강국이 모범을 보이면, 다른 나라가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스스로 핵무기를 버리면, 일방적으로 버리면, 군비경쟁은 사라진다. 따라서 미국은 전 국방비를 폐기하라. 전쟁을 포기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경찰뿐이다. 이것으로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면 충분하다."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군대 없는 나라는 가능하다

2001년 12월 2일, 스위스에서는 ‘군대 없애기’ 국민투표가 시행됐다.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투표에 오른 ‘군대 없애기’의 지지율은 21%에 그쳤지만,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자 적어도 군비가 축소되었다. 군부 독재와 내전으로 얼룩진 중남미의 상황은 어떨까?
코스타리카는 “항구적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평화 헌법을 가지고 있다. 1949년 6주 간의 내전으로 2000명이 죽자, ‘군인의 수만큼 선생님을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대를 없앴고 국가 예산의 1/3을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중남미에서 가장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는 상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중남미를 앞마당으로 생각하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나라에 해병대를 앞세워 침략하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평화를 위해 모두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주변 국가의 분쟁까지 해결한다. 코스타리카 정치인들은 내전이 지속되는 중남미 국가들을 찾아가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진행했고, 그 결과 평화합의를 성립시켜 내전을 끝마쳤다.

외국의 침략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코스타리카 시민은 "무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낳는다" "군대를 가지면 다른 나라에 간섭하게 된다" "국방비를 교육비나 의료비로 돌리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휴전 상황 아니냐?"는 반론은 병역비리와 특혜, 20만 명의 공익요원, 후방에서 삽질하는 군인 앞에서 무의미하다. 북한의 침입을 걱정한다면, 왜 포크레인 한 대가 하루 할 일을 중대가 붙어 몇 날 몇 일 하는 걸까? 우리는 군사 독재를 거치며 몸을 불린 군대를 비판 없이 유지하며, 공짜로 부리는 인력을 철저히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10,000명 모아 군대 없애자 
"전쟁에 반대한다" "군대를 없애자" 외쳐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평화조약도 만들었지만 전쟁은 반복된다. 전쟁을 없애는 최고의 효과적인 방법은 시민의 군대 거부다. 매년 700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지금까지 1만 명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전과자가 되었지만, 그 선택은 개인적 의미를 가질 뿐,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넓히고 싶다. 그래서 나와 함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입대 거부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고, 현재 26명이 모였다. 올 해 20만 명이 군 입대를 하는데, 그 중 10,000명이 군대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군축은 가능하다.

결과는 달콤하더라도 과정은 눈물로 가득할지 모른다. 만약 군대 거부 캠페인이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는 병역기피죄로 감옥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또 전과자가 되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삶을 살아갈 확률이 크다. 더 많은 사람이 큰 부담 없이 군대 거부를 외칠 수 있게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와 친구들은 한국에서 군사 제도가 없어지는 날 헤어지기로 했다.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란 문구를 새긴 티셔츠 한 벌로 올 여름을 보낸 나는, 언론매체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고,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갔다. 하루에 1,000개가 넘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고, 최대한 모든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논의한다. 군대 거부 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군대 거부를 제안하면 사람들은 ‘왜 내가 나서야 해? 난 그냥 조용히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야!’ 생각할지도 모른다. 군대 거부는 ‘나’보다 ‘우리’를 위한 행동이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을지도 모를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지만 ‘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으니까! 내 가족과 친구가 힘드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힘들게 겪어온 과거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믿기에 다른 즐기고픈 일을 제쳐두고 나서게 된 것이다. 감옥에 가는 길 외에도 각자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참 많다. 여러분도 함께 하자. (손전화 010-4424-0419, 홈페이지 club.cyworld.com/armyno)

'평화'택시회사로 병역거부 전과자를 고용한다. '평화'당을 만들어 우리가 직접 '평화'헌법도 만든다. 그리고 탱크 위에 올라 손 흔드는 사람이 아닌, 고통 받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 전세계가 우리를 따라 군대를 없앤다.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꿈일까?

"군대 없애자"는 주장은 무척 간명해서 계획도 힘도 없어 보이지만, 프라하의 봄은 폭력 없는 미래를 보여줬다. 아무 훈련도 안 받은 체코 시민들이 소련군에 대항하여 병사의 총구에 꽃을 꽂아 주며 평화를 지켰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인도에서 소금의 제조, 판매를 독점하는 소금세법을 시행하려 하자, 간디는 직접 바다로 가서 소금을 만들어 쓰겠다며 행진을 시작했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간디는 혼자가 아니었고, 17년 후 인도는 독립했다..

당신은 어머니, 아버지를 죽이는 연습을 할 수 있는가? 따지고 보면 적군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우리는 대체 왜 싸워야 하나?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군대 없는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나 혼자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가 '우리'가 되는 순간 그 주장은 매우 현실적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전쟁 없는 세상'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누군가 우리를 폭력으로 정복하겠다면,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탱크 앞에 서자. 저항하는 국민은 죽일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다. 평화를 선택하자.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3 | 트랙백(1) | 덧글(2)

서해교전 전사자는 개죽음을 당했는가 2008.10.13.

개죽음: 아무 보람 없이 죽는 죽음. 

"서해교전에서 전사하신분들도 개죽음 당한 것이냐고" 묻기에 "응. 개죽음 당한 거야." 답했다.
 
1999년 1차 서해교전에서 30명이 넘는 북한 병사가 죽고 2척의 배가 침몰되자, 조중동은 이를 <연평대첩>이라며 자랑했다. 남한의 피해가 컸던 2차 서해교전에선 언론은 군 고위층과 북한 욕을 해댔다.
 
남북한 구별없이 그 병사들은 왜 죽어야 했나? 또 언론은 뭘 잘했다고 떠들어 대는가.
 
북방한계선(NLL)은 군사분계선도, 영해선도 아니다. 그저 남한이 이를 '불법무단'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니 우리가 '독도 관광'을 시작했듯이, 북한도 매년 NLL을 넘어옴으로써 남한의 땅따먹기를 막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은 "NLL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미국 국무성도 서해를 분쟁해역 또는 공동 해역이라 얘기한다. NLL은 53년 유엔사령관이 남한 배가 북쪽을 더 이상 넘지 못하게 임의로 설정한 선인데, 남한이 사실을 왜곡해서 자기 바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해마다 꽃게잡이 철이 되면 NLL 위에선 남북 어선이 서로 많이 잡기 위해 뒤엉킨다. 남북한 군인들은 남북한 어선들을 위협하고, 1, 2차 서해교전도 그 과정에서 생겼다. 참사의 희생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겠지만, 그들의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상대 또한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전쟁의 위험이란 결과를 만들었을 뿐이다. 누군가 그들의 죽음이 '개죽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은 아무 보람 없이 죽었다, 즉 개죽음 당했다고 말하겠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불편하고 냉혹한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군대가 꼭 필요해?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는 질문이 들린다. 만약 당신이 평화를 위해 군대와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내가 살기 위해 우리 가족을 다 총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군가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대개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 하겠냐?"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평화주의자는 대개 "맞겠다"고 대답했고, 그 이후엔 숙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당황한 사람들은 "누가 네 여동생을 강간한다면?"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었고, 어떤 대답이 나오든지 평화주의가 강간이나 폭력을 옹호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들은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함정이다.
 
'현실'을 강조하며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가 없으면 안보가 불가능하며, 군대가 사회의 안전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머릿속 얘기도, 홉스의 책을 근거로 하는 얘기도 아닌, 역사의 기록에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듣고 싶다(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민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전투에 참여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자. 군대 왜 생겼을까? '왕권 강화'를 위해 군대가 만들어 졌다. 상비군과 중상주의가 중세 왕권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라는 거 세계사 시간에 다 배웠을 거다.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존재했다. 군대의 존재 이유는 '전쟁 없애기'가 아니라 '왕권강화'였고, 다른 게 아니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미 국가 재정 전부를 국방비에 투자해도 중국의 군사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군대를 없애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는 논리대로라면 우린 오래 전에 이미 중국이나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물리적인 국방력의 대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 군대가 있든 없든 전쟁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만약, 미국, 북한, 중국, 일본이 쳐들어 온다면, 또는 한국이 외국을 침략하거나 자국민을 죽인다면, 나는 옷을 벗고 완전 비무장으로 탱크 앞에 서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 외치겠다. 지난 국군의 날처럼 나 혼자 '평화' 누드를 한다면 개죽음 당할 게 분명하다. 바로 당신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서로에 대해 방어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대' 때문에, '애국심'과 '국익' 때문에, 그리고 3,000만 명을 제외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이라크는 망했다. 군대는 우리를 이웃국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공격의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웃나라를 침략하며, 우리의 삶조차 위협한다. 전쟁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우리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결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평화는 선택이다.
 
남미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9년 제정된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 제도로서의 군대는 폐지한다"고 말한다. 유럽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27개 나라도 군대를 없앴지만,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략하지 못한다. "우리는 휴전 상황인데 그 나라랑 우리랑 같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다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만 "군대 없는 나라가 가능하느냐?"는 확신에 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그래, 군대 폐지가 한국 현실에서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혁은 항상 이상을 따라가지 않았나? 노예제 폐지, 호주제 폐지, 여성 대통령.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만약 전쟁의 목적이 오로지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것처럼 발표되면,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 일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 내용이다. 이처럼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만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세계를 대량살상무기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9년에 걸쳐 32만 명을 파병했고 그 대가로 10억 달러를 받았던 베트남전쟁은 어떤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 잘못을 교과서에서 지웠듯이, 미국도 한국도 침략의 역사를 지우고 평화의 가면을 쓴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51.6%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1년에 400조 원, 1분에 12억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돈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50만 명의 어린이에게 1년 동안 하루 세 끼를 줄 수 있고, 집 없는 67,000명이 집주인이 될 수 있다. 한국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한 해 국방비로 17조 원을 쓰고 있고, 북한은 2조, 중국은 20조, 일본은 40조를 사용한다. 경제학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병을 치료하려면 1년에 15조 원이 필요하다. 세계는 군대 유지를 위해 매년 1,100조 원을 버리고 있다. 무기로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무기 상인과 정치인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 현실을 선택했다.
 
강남 테헤란로를 행진하는 탱크를 아기에게 보여주며 박수 치는 엄마. '나쁜 놈' '교활한 놈' 비열한 놈'이라 북한을 욕하며 3배 많은 간첩을 보내는 남한. 다른 국적을 선택했다고 입국 거부 조치 당한 연예인과 욕하느라 정신 없는 네티즌. 군 가산점제 비판하는 여대생을 강간하겠다는 글과 박수치는 댓글. 나는 미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당신도 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다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쟁중독과 평화. 무엇을 고르겠는가?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0 | 트랙백 | 덧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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