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은 누구인가?

1. 강의석? wikipedia에서 인용한 내용을 수정.
2004년 6월 저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종교 예배를 강요하는 행위를 반대했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퇴학 처분 무효의 소를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학교 내 종교자유를 비롯한 인권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 교육청 앞 1인 시위, 피켓 들고 지하철 타기, 온라인 사이트 운영, 언론 인터뷰, 방송 출연, 거리 캠페인, 촛불집회, 부산~서울 국토대장정,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 손해배상의 소 제기, 국회 로비, 기금 마련 팥빙수 팔기 등등을 했고요.
2005년 9월  프로 권투 선수 자격을 땄고,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2005년 10월, 강의석은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종교 활동을 강요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2007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학교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인정하며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해, 현재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고등학교 1, 2학년 때엔 왜 종교행사에 반대하지 않았나?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아 기독교 재단 사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입생 대표였던 저는 입학식 예행연습 10분 전에 "기독교 교육을 잘 받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선서문을 받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 자체가 나쁜 게 아니기 때문에 선서했습니다. 입학하고 나니, 학급 예배도 있고 수요일마다 전체 예배가 있었죠. 1학년 말에 학생회 회장, 부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출마하려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목사님과 상담했는데 교양으로 접해보라고 해서 교회에 가게 됐죠. 교회에 가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진실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학생회 부회장을 하려고 교회에 와서 이 사람들이 목적으로 삼는 것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힘들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1학년 말 선거에서 부회장이 됐고, 2학년 때도 그렇게 합리화를 시켰죠. 고 3 때 학생회의에서 학생회장이 되려면 교회에 나가야 된다는 조항을 만장일치로 삭제하기로 의결했는데 지도교사의 한 마디에 무시되었어요.
 
3. 다른 학교에 전학가라고 했는데, 왜 거부했나?
학교에서 교육과 종교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칠 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왜 종교가 들어와야 하느냐는 거죠. 종교와 교육은 별개라는 것이고 종교 교육을 하고 싶다면 신학대학에서 하면 되고, 고등학교에서 굳이 하고 싶다면 신학고등학교를 만들어서 하면 또 모르겠어요. 그리고 저는 종교와 상관없이 대광고에 남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고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교에 가서 그 자유를 누리고 싶지는 않았고 친구들과 함께 바꾸고 싶었어요. 한편, 종교를 이유로 전학을 갈 수 없고, 다만 거주 이전의 편법으로 전학을 갈 수 있습니다.
 
4. 단식을 한 이유?
그 당시에 제가 이 나태해지는 것 같았어요. 어떤 활동에 있어서는정말 열심히 했다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긴 하는데, 일반적으로 지쳐 있었고 밀려가는 그런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을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단식을 해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내 자신에게 전달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너무나 당연한 걸 주장하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당연한 것은 보이지 않고, 겉에 있는 것만 보여지게 되구요. 학교의 말이 진실인 양 보도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안의 진실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어요.
 
5. 고등학교 때 성적은? 왜 서울대학교인가?
수능에서 언수외 -19점, 사탐 -20점 해서 461점 받았습니다. 학교 2학년 때부터 1등해서 중학교 1등 졸업, 고등학교 1등 입학, 1학년 때 2등, 2학년 때 인문계 1등했습니다. 2학년 때 동대문구 수석을 한 번 했습니다.
대학을 가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편견에 젖어 있었고, 외국대학을 가기에는 준비가 적었고, 정치를 하고 싶어서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죠. 그런데 학생 인권 캠페인을 하다가 학교에서 퇴학됐습니다. '올 해는 대학 못 가겠다' 싶었는데 법원에서 가처분결정이 나와서 서울대 수시지원 마감을 이틀인가 앞두고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나처럼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법과 사랑에 빠져서 법대에 지원하려 했는데, 학교에 돌아와 보니 지역균형선발은 이미 사람이 정해져 있었어요. 다행히도 홈피를 잘 검색해 보니 특별전형이란 게 있었고, 평소 주말마다 장애인재활센터에서 봉사활동 했던 게 500시간 이상이라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단식하다가 학교에서 작은 약속 얻어 내고 다시 입시 준비를 했고, 수능은 몇 등급 이상이면 된다기에 논술만 공부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지원한 적은 없고 서울대학교에만 지원했습니다.
 
6. 종교에 대한 생각?
저는 무교입니다. 그 누가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합니다.
 
7. 교회장학금을 받았다던데?
전교 1등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받았습니다. 장학생 모임에 갔는데 찬송가를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설교를 하십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께서 후원을 해주시는 거라고 하더군요. 뛰쳐나오려고 했는데, 무례한 것 같아 참았습니다. 나중에 돈으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장학금 전액을 반납했습니다.
 
8. 별명이 왜 '바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바보는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낮아 보이지만 쉽게 다른 사람과 대화로서, 관계로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고요. 바보만이 있는 세상은 멍청하고, 이해관계 그런 걸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실수는 많겠지만, 전쟁 같은 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저를 모르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다, 더 배워야 된다는 취지입니다.
 
9.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휴학한 이유?
법대를 선택했던 이유가 그 당시에는 반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법을 미친 듯이 좋아하고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다가 재판 과정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깐 법이라는 것이 확실한 잣대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이라는 것이 과정을 통해서 재판으로 나타나게 되는 건데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거짓말도 하고 그런 것들 보면서 법이라는 것이 순수하고 깨끗한 것만은 아니구나. 크게 깨닫고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 자유 캠페인하고 학교생활을 두 가지를 하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벅차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우선은 학교 내 종교 자유 캠페인을 활성화 시키고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이제 다시 학교생활로 돌아오자. 이런 의미로 휴학을 했는데 휴학을 하고 나서는 두 가지 모두 다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10. 택시와 호스트바는 왜?
길 가다 택시가 지나가는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태운 손님이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제가 관심을 보이니까 한 번 오라고 했어요. 택시를 관둔 후에 그 사람을 찾아간 거죠. 택시 손님 중 보험회사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보험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호기심이 생겨 해보고 싶어지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냥 해봐요.
 
11. 영화를 찍었다던데?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와 청춘멜로드라마 <뜨거운 사랑>을 만들었어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하신 교수님과 아프리카 문화 수업을 수강한 대학생들이 함께 30일 간 아프리카로 떠나, 사막의 나라 나미비아에서 전통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오바힘바족과 함께 보냈던 3박 4일을 보여 줍니다.<뜨거운 사랑>은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가진 대학교 신입생의 연애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표현했고요. 애인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데 누군가의 작업에 흔들리는, 애인이 다른 이성과 자주 만나는 등의 상황에 따라 인물 심리가 미묘하게 변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12. 언론노출증?
기회가 된다면 그 기회를 잘 활용해서 종교자유 사안은 물론이고, 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도록, 그 시간과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집중하려 합니다.
 
13.악플에 대해?
우선은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냥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떤 생각이든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유 존중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14. 정치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이 활동을 한 것?
세상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저는 그 분들을 위한 거름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면 진짜 모두가 행복할까? 의문이 듭니다.
 
15. 류상태 선생님?
제가 퇴학당했을 때 퇴학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가 교목실장 자리에서 평교사가 되시고, 안 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학교가 계속해서 종교의식을 강요하자 그러면 안 된다며 사표를 내신 분이 류상태 선생님이십니다. 그저 답답합니다. 가끔 강연도 하시고, 책도 쓰시고, 여러 일을 통해 자기의 뜻을 펴고 계십니다. 가끔 뵐 때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 넌 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라. 네가 오히려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행복하다고 믿을 뿐입니다.
 
16. 군대는 안 가나?
저는 자유롭게 살고 싶으며, 군대가 오히려 나라의 평화를 해친다는 생각에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고, 따라서 군대에 갈 수 없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긴 글로 썼습니다.


17. 지금은 뭐해?
법적인 싸움을 위해 사법시험 준비 중입니다. 학교 내 종교자유 소송과 함께 병역거부자 10000명 모으기(11/20 현재 26명)를 하고 있습니다.
 
18. 한자이름, 영어이름, 혈액형과 생일?
姜義錫, Kang Wesuck, B형, 1986.8.25. 오전 11시.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3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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