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을 위한 비판'은 이제 그만 2008.10.


안녕하세요. 한국의 평화활동가 친구들. 강의석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저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고 얼른 확인하라는 친구들의 문자와 전화를 받고 들어와 보니 메인 화면에, <군대 없애는 '알몸쇼' 실패했습니다>란 기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폭력성을 언급하며, 제게 공개편지를 쓰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삶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를, 문제제기된 방식으로 했으니까요. '언론노출증'을 지적하면서 전화, 편지, 만남 등의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언론'을 이용한 까닭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논의 지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쓴 글이라 하지만, 글 내용과, "실패했습니다" "난센스입니다" "진정성은 없다"는 단정적인 어투를 보면 결국 저와 제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과 자기 운동 방식에 대한 오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저는 평화활동가들이 '평화 난장'을 연다고 해서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공연도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제게 발언과 함께 총 맞는 연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왜였을까요?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다른 사람도 있었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민도 많았는데 왜 '강의석'이 발언과 퍼포먼스를 해야 했을까요?
 
사흘 뒤, 저는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정치 선전 다큐멘터리 <군대?> 제작을 통해, 영화 만들기의 기쁨에 빠지고 동시에 군 입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 한홍구 선생님의 <군사주의와 한국사회> 수업을 청강하고,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국방부 자료를 얻어오고, 평화활동가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 밥도 같이 먹고 이사도 도와 드리며 운동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무박이일 군대 토론 난장을 열고, 전의경 폐지 연대를 만들며 평화활동가와 함께 활동하던 중,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현역 의경이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은신처에 숨어있을 때, 기자회견 한다고 하길래 그 사실을 기자에게 알렸습니다. 제 행동 때문에 은신처에 기자들이 몰려왔고, 경찰들도 모여 들어 병역거부를 선언한 의경이 체포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기로 생각을 바꾼 부모님의 마음이 또 흔들렸고요.
 
그 때 저는 평화활동가에게 전화 몇 통을 받았는데 큰 소리로 욕을 먹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기자회견은 조금 연기되어 진행될 수 있었고,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다음날 새벽 농성장에 찾아가 사과했습니다. 평화활동가들은 아직 제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 된다며 이따가 연락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농성이 끝날 때까지 저는 아무런 연락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농성장에 있던 친구가 해 준 얘기는 놀라웠습니다. 그 친구의 카메라가 '강의석' 카메라이기 때문에 촬영할 수 없고, 그 친구도 '강의석' 친구이기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고, 강의석은 '프락치'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쟁 없는 세상'이라는 같은 목적 아래 활동을 하다 보니 평화활동가와 마주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인사를 건네면 무시하는 평화활동가를 보며 당황하기를 한 달, 평화활동가들이 주최한 '평화캠프'가 진행되었고, 미리 참가신청을 해 둔 저로서는, 평화활동가와 소통이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캠프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다시 인사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고, 캠프 이후에는 국군의 날 대안 퍼레이드 회의에 참여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집회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평화활동가에게 연락도 안 오고, 전화해도 안 받아서, 같이 하자고 구걸하는 식으로까지 함께 활동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도 계속 연락이 안 돼서 공동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뭘까요? 왜 힘을 모아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지 않고, 미워하고, 갈라서는 건가요? 제가 '전쟁 없는 세상'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거란 바람을, 이미 만들어진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 군대 없애기, 또는 징병제 없애기를 위한 담론 형성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요? 제가 ‘언론노출증’과 '진정성'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이야 말로 달이 아닌 손가락을 보는 것 아닌가요?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게 핵심인데, 왜 스포트라이트에만 집중하는 것인가요?
  
오랫동안 평화활동을 해 온 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평화운동의 장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 마디 하는 것보다, 평화활동가가 한 마디 하는 것에 사람들이 더 귀 기울지도 모르고, 저 보다 훨씬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자기의 영향력과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며, 강의석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답답합니다. 함께 합시다. 오해 있으면 만나서 얘기하며 풀고, 화나면 화도 내고, 욕하고 싶으면 욕도 하고. 술 한 잔 해요. 하지만 여전히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과 활동은 존중하겠지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와 함께 군대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선적인 저 때문에 활동을 그만 두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로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싫고, 공동체의 결정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무시하는, 사람 무시하고 뒤에서 남 욕하는 사람들과 그 어떤 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국군의 날, 언론이 크게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친구들과 함께 국군의 날 퍼레이드 장소에서 발레로 '평화'를 표현했고, '무기 없는 세상은 달콤하다'는 의미로 총 모양 쿠키를 나눠줬습니다. '평화' 누드도 했습니다. TV에서 보시기에 '비무장'한 시민이 '완전무장'한 탱크를 멈췄다는 것을 느끼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기자 18분에게 "15분 뒤 현대백화점 앞 평화 누드"란 단체문자를 보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찰이 도청 할까봐 작업실에서는 제대로 얘기하지도 못 했고, 문자 메시지에도 암호를 섞어 보냈으며, 언론에 알려 들킬 위험을 높이기 보다는, '평화' 발레와 누드를 우리가 직접 촬영해서 언론과 시민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총 11명의 촬영팀이 구성됐고, 고용된 인원이 4명, 그 외 인원은 졸업작품을 만들거나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으로 함께 했습니다. 테헤란로에서 수 차례에 걸친 촬영 리허설을 진행했고, 지금은 작업실에 모여 영상을 편집하며 우리가 던지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회운동의 분명한 목표는 많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 명에게 알리는 것보다, 한 명의 지지자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박태환씨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비무장' 알몸으로 '완전무장' 탱크를 막은 행위를 통해서 저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문자와 전화를 받고, 10000명이 넘는 사람이 미니홈피를 다녀갑니다. 전화가 오는 도중에 전화가 세 개씩 오고, 수신함이 가득 차 문자가 지워지면서 답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대한 모든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군대 없으면 너네 엄마 누가 지키냐 미친 새끼야" "위선자" "가기 싫으면 깜방 가던가" 등의 문자도 많지만, "모임 때 놀러 가고 싶어요" "저도 동의함" "군대가 정말 꼭 필요할까요? 평화가 최고인데" 등의 문자가 더 많고, 함께 병역거부 운동을 끝까지 하겠다는 친구들도 새로 생겼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쾌적하고 널찍한 작업실은 TV를 보고 연락주신 분이 외국에 간다며 남겨 주고 가신 공간입니다. 총 쿠키를 만들 때에도, 모르는 분이 자기집 오븐을 보내 주셨고, 영화를 만들자고 하니 다양한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거리에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란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한편, 방송, 신문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함께 할 사람을 모으는 데 힘쓰고 있으며,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스쿠터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국군의 날, 저는 12시간 동안 구덩이 속에서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평화활동가들이 눈이 빠져라 새벽까지 무기공부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밤 새며 전쟁사를 공부했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장 국방예산 1조 원을 줄여서 국제아동구호기금으로 돌리면 좋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출근길에 "군대가 필요해?"라는 질문을 몸에 새겨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제가 쓴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는 글의 핵심은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함께 갈 것과 국군의 날 반대 행사에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라는 질문을 자유롭게 던져보고 싶었고,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병역 특례 혜택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전투력이 강한 태권도 메달리스트가 병역에서 면제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문장은 농담이었는데, 진담으로 받아 들이시는 분들을 보며 저도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푸념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누구에게든, 군대를 없애기 위해서 입대 거부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700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지만, 그 선택은 개인적 의미를 가질 뿐,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연결고리를 넓히기 위해 군대 대신 감옥 가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병역거부는 감옥행을 의미하고, 병역거부자들은 출소 이후에도 평생 전과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고, 그 가족들이 겪을 아픔은 참으로 처절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사필귀정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종교자유'를 주장하면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온 가족이 울었지만, 퇴학 무효 판결을 받고 학교 내 예배 선택권을 보장받았으며,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저는 다만 제안을 할 뿐입니다.

 
"군대를 폐지합시다"라는 주장은 무척 간명해서 계획도 힘도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을 아시나요? 60년대 말, 아무 훈련도 안 받은 체코 민간인들이 소련군에 대항하여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병사의 총구에 꽃을 꽂아 주며 평화를 지켰습니다. 3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간디가 인도에서 이끈 비폭력 저항운동은 어떤가요? 굴복하지 않는 국민은 죽일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선택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아래 글로 첨부합니다. 행복합시다.
 
 
 
군대 꼭 필요해?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만든다. 어느 시대, 어떠한 전쟁에서도 외국을 침략하는 나라는 자기가 욕심이 많아서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세계를 대량파괴무기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9년에 걸쳐 32만 명을 파병했고 그 대가로 10억 달러를 받았던 베트남전쟁은 어떤가. 그들은 도대체 왜 베트남에서 싸워야 했을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 잘못을 교과서에서 지웠듯이, 미국도 한국도 침략의 역사를 지우고 평화의 가면을 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8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지구촌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날은 겨우 26일뿐이다. 90년대 보스니아 전쟁, 21세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2008년 그루지야 전쟁. 우리의 삶은 평화와 너무나 멀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은 국가와 국민 사이의 오랜 전쟁이었다. 100년 동안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억 970만 명인데, 시민이 6,200만 명으로 군인보다 더 많다. 1990년대 전반기의 전쟁 희생자 550만 명 가운데 75%가 시민이다. 즉, 국가가 외국인이 아니라 국민을 살해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필리핀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과 싸워본 일이 한 번도 없고 필리핀 사람들만 죽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한다고 말하지만, 대한민국 군대는 제주도에서 거창에서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총살하고 민주화 정부를 뒤엎었고, 현재는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현실'을 강조하며 평화를 ‘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대가 없으면 안보가 불가능하며, 군대가 사회의 안전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머릿속 얘기가 아니라, 홉스의 책을 근거로 하는 얘기도 아니라, 역사의 기록에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듣고 싶다.
 
대한민국사를 봐도, 군사적으로 가장 강했던 시기에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6․25 전쟁 당시에도 한국의 군대가 북한의 군대보다 강했다면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공공연히 북진통일을 주장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게 ‘꿈’ 아닐까.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병을 치료하려면 1년에 15조 원이란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가 공상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1년에 1,100조 원을 군대에 쏟아 붓고 있고, 이라크 침공에는 4,000조 원 이상이 쓰였다. 어느 나라든 먼저 군비 경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외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러지 않는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전 세계에서 3,00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세계 시민 모두가 행복과 평화를 원하고 서로에 대해 방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군대’ 때문에, ‘애국심’과 ‘국익’ 때문에 이라크는 망했다. 군대는 우리를 이웃국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공격의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웃나라를 침략하며, 우리의 삶조차 위협한다. 전쟁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결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남미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1949년 제정된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 제도로서의 군대는 폐지한다.”고 말한다. 유럽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27개 나라도 군대를 없앴지만,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략하지 못한다. 군대를 없애고 중립을 지키면, 오히려 그 나라를 침략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군대 거부로 인해 당장 감옥에 가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울리게 되더라도, 그 누구도 총을 들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평화는 선택이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2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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