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서의 유쾌한 시간 2008.6.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을 바꾼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고, ‘그렇다면 굳이 뼈 빠지게 공부할 필요 없겠구나’ ‘나만 행복하자’는 결론을 얻어 최근 1년 동안 즐겁게 놀았다. 종로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독립영화 현장에 뛰어들어 밤새 술 마시며 수다 떨고, <뜨거운 사랑>이란 삼류 멜로영화를 만들고, 로맨스의 환상에 빠졌다가 눈물을 흘리고, 제주도에 가서 눈 덮인 한라산을 보며 감탄하다가 차 사고가 나서 거지가 되고,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자며 택시기사가 되고, 택시 운전 중 호스트바에 스카우트가 되고, ‘섹엉(섹시한 엉덩이)’이란 애칭으로 선수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출근을 제지당했다. 나를 만류한 사람은 어머니, 애인, 친구도 아닌 한국 경찰이었다.
 
촛불문화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만 하고 싶은 일 하느라 바빠 외면하다가, 고등학생 친구 한 명이 함께 가자고 해서 잘 됐다 싶었다. 5월 31일 토요일 오후 시청으로 향했다. “엄마가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서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한다.”는 고딩 친구의 말을 들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웃다가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전경과 버스 2대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굳이 서로 밀칠 필요 있어?’ 하면서 버스에 올라가 청와대로 넘어가려는 순간 전경에게 잡혔다. 그것이 불법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맞서 싸울까 하다가 내가 때리면 전경이 아플까봐 그냥 잡히기로 했다. 그런데 하릴 없이 잡혀있는 날 왜 때렸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 10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시민들이 때려서…, 일까? 머리는 샌드백이 되고 얼굴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고, 옷과 시계는 뜯어지고, “넌 죽었어.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고.
 
뭘 잘못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미란다 고지도 하지 않아 당황한 가운데 나를 비롯한 12명은 은평경찰서로 이송됐다. 그곳은 아늑했다. 진보신당과 민변에서 변호사가 찾아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틀 동안 하루에 한 번 2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다. 내가 버스에 올라간 사진은 있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던 나를 전경이 때리는 사진은 없는 걸 보며 놀라지도 않았다.
 
김치, 단무지, 김칫국, 흰밥으로 구성된 푸짐한 식사를 하며, 유치장 안에서 우리는 수건돌리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유쾌하게 보냈다. 지방에서 온 친구는 시외버스가 끊긴 밤 11시가 넘어 풀어주자 하루만 더 재워달라고 할 정도였다. 함께 뉴스를 볼 때면 형사 입에서, “우리도 노조 있으면 파업하고 싶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 분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역겨웠으나, 삶의 태도는 존중했다.
 
유치장 안 47시간 동안 심심할 땐 대법전을 빌려 읽으며, 다시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다. 잘못된 법도 있지만, 있는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는 씁쓸함에 내 작은 힘이라도 법치주의 확립에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와서 마중 나오신 어머니는 ‘왜 우냐’는 말에 대답도 안 하시고 집에 오는 한 시간 내내 우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울린 사람과 제도를 용서할 수 없다고 다짐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 호스트바 일을 그만 뒀다. 공권력의 횡포를 가만히 지켜본다면 나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하고 싶은 일인 한국 군사문화를 청산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매진하고, 밤에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촛불문화제에서 사람들과 함께 유쾌하게 수다 떨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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