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빨갱이?

전화벨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네.” “네? 황당하시지 않으세요? 괜히 잘 지내는 사람을 들쑤셔 놓았잖아요.” “아, 그거요?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죠.”

대광고 전 교장선생님 탁준호씨는 최근 발간된 <대광 60년사>에 “강의석은 민노당·민주노총·전교조 등의 사주와 조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활동은 ‘종교의 자유’를 위장한 반미·반기독교 좌파연대운동이었”고, “고지식하고 단순한 학생(나)은 시류에 영합해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시민단체 등 동조세력과 어울리며 집회에 참석”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해 있었다”고 쓰셨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재밌었다. 하하하. 잠시 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서운하고 답답해서 우시겠다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03년 11월 3일 학생의 날. 대광고 학생회는 ‘저질급식 개선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버튼을 학생과 교사에게 나눠줬고, 복도에는 각 학급 학생들의 요구가 담긴 대자보와 만화를 게시했으며,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자유 발언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이 인사할 때 선생님께서 무시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합창부원은 음악점수가 무조건 97점 이상이고, 그 외 학생들은 80점인 억지는 없어져야 한다.” 등등 이야기가 나오며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만세 삼창을 하고 끝내라는 교감선생님의 제안에 “학생이 주인이 되는 대광고등학교 만세! 만세! 만세!”를 다함께 외치며 나는 참 행복했다.

1시간 후, 학생부장님께서 날 호출하셨다. 학생부실엔 좀 전에 강당에서 “교장선생님 말씀 좀 짧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후배가 혼나고 있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선생님, 뭐 하세요?” “(웃으면서) 맞는 말인데 그런 말 거기서 하면 안 되지.” “(정색하며) 이 친구, 잘못 없습니다. 보내 주세요.” (중략) “(버튼을 보여주며) 이딴 거 계속 달고 다닐 거야?” “네.” “(버튼을 던지며 호통) 나가. 징계위원회 열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징계위원회’란 얘기에 깜짝 놀라기도 잠시, 그로부터 일주일간 나는 수업 도중에 체육부실에 계속 불려 다니며 반성문 작성을 강요받았고, 잘못한 게 없어서 쓸 수 없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점점 지쳤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고, 당당하게 맞서기로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며 집에 왔는데 엄마가 나를 살포시 안아 주셨다. ‘오늘 따라 내가 사랑스러운가?’ 나도 엄마 사랑하는데 뽀뽀라도 해 드릴까 하며 얼굴을 바라봤는데 맙소사 엄마는 울고 계셨다. “의석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자.” “(울음보가 터지며) 응.”

다음날 나는 학생부장님께 잘못했다고 빌었고, 예상 외로 가벼운 벌인 훈계 조치로 끝났다. 나중에 들었는데, 매주 진행되는 교직원 회의 건의사항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손을 번쩍 들고 단상에 나가 내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선처해 달라며 우셨다고 한다. 나는 또 울었고 곧 있을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 울게 될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 내게 교감이 충고했다. “나는 고3 때 입시준비에 매진하느라 교회도 안 갔다. 너만 능력 있는 게 아닌데 너무 욕심 내지 말고 회장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공부해라. 안 그러면 다시 징계위원회를 연다. 대학 가서 한총련 활동 할까 걱정된다."

학생회장이 된 나는 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교내외에서 인권 캠페인을 펼쳤고, 교장과 교감은 나를 퇴학시키면서 자식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배후에 좌파세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008년 5월.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 반대 촛불문화제’를 10대가 주도하자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충동적으로, 연예인 따라서, 놀이 문화가 부족해서,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아 거리에 모인 것이라고. 그러나 연령을 기준으로 나와 너를 가르고 너는 나보다 못하다며 ‘찌질이’ ‘빨갱이’ ‘빠순이’로 규정짓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정신연령은 나이와 반비례하나 보다. 울지 말고, 우리 다함께 환하게 웃자!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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