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2008.3.

세계평화를 꿈꿨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정책을 잘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단순한 목표였고 간단히 이룰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다른 사람도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모기를 죽일 수 없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 죽이면 안 돼. 그냥 조금 피 주지 뭐.’ 그러나 모기의 행위는 모기의 존재에 대한 증오를 불러왔고, 모기가 내 가족이나 친구의 피를 뽑는 모습을 볼 때 괴로워하다가 결국 남이 모기를 잡는 것을 봐도 모른 척 했고,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방법으로 살해했다. 음, 모기향이 그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요새는 죄책감 없이 모기를 잡는다. 모기와의 관계를 통해 모두를 사랑하는 것,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학생회는 내 전부였다. 월 1회 대의원회의를 한다는 학생회칙부터 실현했고,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학교 행사를 주최하며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학생 대표 기구가 될 수 있도록 뛰어 다녔다. 다른 친구들이 학생회 활동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는 슬펐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거나 바꾸어 가며 느끼는 즐거움을 공유할 때면 얼굴 전체가 기쁨으로 웃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우선 대학교에 진학해서 폭 넓은 교양을 쌓고 몇 십 년 공부하면서 방법을 찾아보자며 입시 준비에만 매진하고 사회 부조리에는 눈 감기로 다짐했던 고등학생 때도, 명찰 안 달았다고 선생님께 뺨 맞는 불합리한 상황까지는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학생회 활동을 계속했다.

점식 식사에 수세미 조각이나 벌레가 섞여 나오면 디카로 사진을 찍어 급식 환경 개선을 건의하고, 교사가 학생을 골프채로 때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동안 체벌 사례를 조사하고 발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고, 학교 축제에 사제가 어울릴 수 있는 코너를 기획하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엔 명분 없는 전쟁이 벌어졌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해하다가 이라크 전쟁 반대 캠페인을 주제로 대의원 회의를 열어 토론하고, 11월 3일 학생의 날엔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자며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자유 발언의 시간을 가지고, 학생들이 공통으로 보는 문제집은 공동구매하면서 꿈을 이루는 듯 했다.
 
그러나 학생회장이 되려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학생회칙을 만장일치로 개정하기로 하고, 방과 후 보충수업은 원하는 사람만 수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학생회의 결정이 지도교사의 한 마디 말에 무시되었을 때엔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회의에 빠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교내외에서 인권 캠페인을 펼치고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며 사회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4년이 흐른 지금도 종교계 사립학교에서 종교 의식이 강제되는 모습을 보면 세계평화는 아득하기만 하다.
 
요즘 택시 운전을 한다. 하루 12시간 좁은 공간에서 30명 내외의 손님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고,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나는 나 혼자만 행복해도 그만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내 꿈은 아직 유효한 걸까?

by 바보강의석 | 2009/08/29 02:1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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